[fn사설] 사내 유보금 과세에 입장 바꾸는 정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3 16:38

수정 2014.10.25 06:49

정부가 기업들이 쌓아 둔 과도한 사내 유보금을 끌어내기 위해 페널티나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투자를 활성화하고 성과급·배당 등을 통해 가계로 흘러가는 자금을 늘리기 위해서다. 정부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취임 후 첫 과제에 이러한 내용을 포함시킨 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과도한 사내 유보금에 페널티나 세제·금융상의 인센티브를 주려는 정부 입장은 이해가 된다.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가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다 내수 ·투자·고용 등 거의 모든 부문의 지표가 첩첩산중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주의자이자 친(親)기업 성향의 최경환 후보자가 사령탑을 맡은 경제팀이 기업들에 민감한 카드를 택하게 된 배경은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안(법인세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원래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2명의 야당 의원들이 작년 11월 공동 발의했지만 정부·여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경영 판단에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기업들도 반대이긴 마찬가지였다. 일시적인 소득분배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경쟁력을 갉아 먹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변명이 아니다. 기업들은 돈이 될 시장이 보이면 뜯어 말린다 해도 알아서 투자를 하게 마련이다.

정부 입장 선회에 대한 논란 여부를 떠나 한국 경제는 벼랑에 몰려 있다. 민간 싱크 탱크들에 이어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최근 3.8%로 하향 조정했다. 이렇게 될 경우 2010년 이후 4%를 넘은 해는 한 번도 없게 된다. 8~9%도 성에 차지 않았던 나라가 소걸음도 힘겨운 국가로 전락한 꼴이다. 성장 동력을 잃은 탓에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13년을 기준, 1조3045억달러에 그쳤다. 한국은행이 올해 도입한 새 기준을 적용해 5년째 14위의 제자리걸음이다.

위기를 벗어날 길은 분명하다. 모든 카드를 동원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나라 경제를 고비 때마다 구해낸 기업들이 있다. 한국은 가계가 1000조원이 넘는 빚더미에, 정부는 무려 10조원 규모(2014년 추정치)의 세수 부족에 발목이 잡혀 있다. 쓰려 해도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근육질 기업들의 금고는 여유가 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10대 그룹 82개 상장계열사(금융사 제외)의 사내 유보금은 477조원으로 2010년 말보다 43.9% 늘어난 상태다.

그러나 정부 결정에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반(反)기업적이서는 안 된다.

납득할 수 없는 불이익이 따라서도 안 된다. 정책 당국의 고민을 이해하면서도 기업활동의 자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당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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