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탄소 배출권 거래제, 끝내 하려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02 18:16

수정 2014.09.02 18:16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내년부터 실시한다. 반면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오는 2020년 말까지 연기하기로 했다. 재계는 두 제도의 시행 보류를 강하게 요구했다. 정부는 이 중 하나만 수용했다. 그간 산업통상자원부는 재계 의견을 대변했다. 이에 맞서 환경부는 두 제도의 동시 실시를 밀어붙였다.
최경환 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가 중재역을 맡았고 결과는 무승부다.

정부안은 고육책이다.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앞두고 애써 봉합한 티가 난다. 배출권 거래제는 환경부가 이겼다. 내년부터 철강·발전·석유화학 업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할당받는다. 할당량보다 더 배출하면 배출권을 사야 한다. 거꾸로 적게 배출하면 배출권을 내다팔 수 있다. 그 대신 환경부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에서 양보했다. 하지만 절반만 물러섰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뿜는 대형차를 사면 부담금을 내는 것만 2020년으로 미뤘다. 소형 저탄소차를 살 때 주기로 했던 보조금은 예정대로 지급한다.

환경부는 마지못해 양보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원래 저탄소차 협력금제는 부담금을 받아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정부가 부담금은 미루되 보조금은 내년부터 주기로 하면서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정부 재정에 더 큰 주름이 잡히게 됐다. 대기환경보전법이 부칙에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의 시행 시기를 2015년 1월 1일로 못 박은 것도 영 찜찜하다. 정부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았다지만 환경단체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환경부는 2015년을 2021년으로 바꾸는 부칙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가 얼마나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배출권 거래제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잘못 끼운 단추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 보여준다. 배출권 거래제는 교토의정서(1997년)의 산물이다.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의무적으로 줄이고, 개도국은 성심껏 줄이자는 게 교토의정서의 정신이다. 하지만 역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이 대열에서 이탈했고 이어 일본도 약속을 파기했다. 현 배출국 1위인 중국은 개도국 지위를 핑계삼아 느긋하기만 하다. 진지하게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한 나라는 유럽연합(EU)뿐이지만 그마저도 금융위기 이후 거래가 저조하다.

이런 난장판에 한국은 뒤늦게 뛰어들지 못해 안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이 발목을 잡았다. 온실가스는 줄여야 한다. 하지만 배출권 거래제는 썩 좋은 방편이 아니다. 미국·일본·중국은 다 안다. 그보다는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녹색기술 개발이 현실적이다.

법을 핑계로 나 몰라라 하는 건 정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잘못된 법은 시행 직전이라도 고쳐야 한다.
배출권 거래제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세계 15위 경제국이 합류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국익에 부합하는 녹색정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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