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은 고육책이다.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앞두고 애써 봉합한 티가 난다. 배출권 거래제는 환경부가 이겼다. 내년부터 철강·발전·석유화학 업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할당받는다. 할당량보다 더 배출하면 배출권을 사야 한다. 거꾸로 적게 배출하면 배출권을 내다팔 수 있다. 그 대신 환경부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에서 양보했다. 하지만 절반만 물러섰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뿜는 대형차를 사면 부담금을 내는 것만 2020년으로 미뤘다. 소형 저탄소차를 살 때 주기로 했던 보조금은 예정대로 지급한다.
환경부는 마지못해 양보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원래 저탄소차 협력금제는 부담금을 받아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정부가 부담금은 미루되 보조금은 내년부터 주기로 하면서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정부 재정에 더 큰 주름이 잡히게 됐다. 대기환경보전법이 부칙에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의 시행 시기를 2015년 1월 1일로 못 박은 것도 영 찜찜하다. 정부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았다지만 환경단체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환경부는 2015년을 2021년으로 바꾸는 부칙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가 얼마나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배출권 거래제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잘못 끼운 단추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 보여준다. 배출권 거래제는 교토의정서(1997년)의 산물이다.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의무적으로 줄이고, 개도국은 성심껏 줄이자는 게 교토의정서의 정신이다. 하지만 역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이 대열에서 이탈했고 이어 일본도 약속을 파기했다. 현 배출국 1위인 중국은 개도국 지위를 핑계삼아 느긋하기만 하다. 진지하게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한 나라는 유럽연합(EU)뿐이지만 그마저도 금융위기 이후 거래가 저조하다.
이런 난장판에 한국은 뒤늦게 뛰어들지 못해 안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이 발목을 잡았다. 온실가스는 줄여야 한다. 하지만 배출권 거래제는 썩 좋은 방편이 아니다. 미국·일본·중국은 다 안다. 그보다는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녹색기술 개발이 현실적이다.
법을 핑계로 나 몰라라 하는 건 정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잘못된 법은 시행 직전이라도 고쳐야 한다. 배출권 거래제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세계 15위 경제국이 합류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국익에 부합하는 녹색정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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