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면세한도 올려도 국민의식은 제자리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5 16:47

수정 2014.09.15 16:47

[차장칼럼] 면세한도 올려도 국민의식은 제자리

"왜 나만 잡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샀는데. 정말 재수가 없네." "얼마 내면 되는데. 내면 될 거 아냐." "좀 봐주면 안되나? 여행에서 좋았던 기분 다 망쳤네. 자기들은 얼마나 법을 잘 지킨다고."

인천국제공항 1층 세관신고지역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면세한도 규정 위반으로 적발돼 세금을 부과받은 여행객들이 인천공항세관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내는 볼멘소리다. 하루에 이런 소리가 얼마나 나올까.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9만1674건의 면세한도 규정 위반이 적발됐으니 하루 평균 432건가량 이런 목소리가 나온 셈이다. 위반건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3년간 하루 평균 위반건수는 425건(총 46만5560건)이었다.

면세한도가 너무 낮다는 여행객들의 요구가 반영돼 지난 5일을 기점으로 면세한도가 400달러에서 600달러로 상향조정됐다.
매년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이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해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음에도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26년 만에 면세한도를 늘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세관신고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기대와는 달리 현장의 모습은 면세한도 상향 전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세관 직원들과 실랑이 벌이는 여행객들은 여전히 많고 강하게 항의하다 구매한 면세품을 압류당하는 것은 물론 벌금까지 부과받는 여행객도 흔하다. 한 여행객은 2200만원짜리 시계를 몰래 들여오다 빼앗기기도 했다. 면세한도가 늘어난 만큼 한도 규정 위반 적발건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건 꿈일 뿐인 셈이다.

세관 직원들의 반응도 '예상했던 일'이란 식이다. 400달러의 면세한도를 지키지 않던 여행객들이 면세한도가 늘었다고 해서 갑자기 규정을 준수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예상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인천공항세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법 규정 적용 강화와 여행객들의 편의 증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여행객들이 면세한도 규정을 잘 지키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많은 여행객들의 가방을 검사하고 규정 위반에 대해 더 강한 벌금을 부과하는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실제 정부는 내년 1월부터는 휴대품을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 부정 행위자에 대해서는 신고불성실 가산세를 현행 30%에서 40%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마음먹고 적발에 나선다면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현재의 근무 인력과 장비를 고려할 때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세관의 검사 확대는 입국시간 증가로 이어져 선의의 여행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결국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여행객들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면세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여러 근거 중 하나는 우리나라 한도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차이였다. OECD 회원국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면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행객들의 바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면세한도가 OECD 평균치에는 거의 도달했다. 한 예로 캐나다의 면세한도는 우리의 이전 수준인 400달러다.
면세한도만 OECD 수준으로 끌어올릴 게 아니라 이제는 국민의식도 OECD 수준을 의식해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 싶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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