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칼럼] 융합·상생시대 함께 열려면../안현호 지식경제부 제1차관

이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8.15 19:14

수정 2010.08.15 19:13

여름휴가를 활용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작가는 서문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인보다 못하며,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이 어떻게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천년의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힌다. 시오노 나나미는 10년간 15권의 대작을 서술하면서 법치주의, 정치체제 등 개별적인 역량을 융합시키는 시스템과 피정복자를 식민지화하지 않고 동반자로 동화시키는 상생과 관용의 정신에서 해답을 찾아낸다.

‘기술력에서는 일본 등 선진국보다 못하고, 가격경쟁력에서는 중국보다 못하며, 자원보유량에서는 브릭스(BRICs) 국가보다 떨어지는 한국 경제가 어떻게 하면 글로벌 위기 이후에 세계 시장질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의 역사에서 해답을 찾았듯 우리도 우리 경제의 현실에서 그 해결책을 고민해 보면 기술, 제품, 산업 하나하나의 발전보다 상호 간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융합’과 대기업·중소기업이 전략적 동반관계로 ‘상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위기 이후 세계 경제질서의 핵심화두로 융합과 상생이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모두에 현재와 다른 경쟁과 협력방식을 요구하는 동시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간 자동차, 조선, 반도체, 휴대폰 등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구도는 대기업 간 경쟁이 근간을 형성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종속되거나 단순 하청업체 구실을 했다. 하지만 융합과 상생의 시대에는 산업 간 경쟁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개별 대기업 간 경쟁에서 기업네트워크 간 경쟁으로 재편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관계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전환됐다. 스마트폰의 경우 애플과 구글은 각각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등록한 개발자에게 수익의 70%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상생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융합과 상생의 시대에는 처음부터 원천기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재조합하기 때문에 단기간 내 사업화가 가능하다. 예컨대 휴대폰 소재를 원천기술부터 투자하면 3∼4년 소요되지만 기존 기술을 잘 조합하면 7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원천기술력이 부족한 우리 중소기업이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융합영역에서 앞서 나가고 글로벌 상생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융합과 상생의 화두를 풀기 위해서 산업융합 촉진전략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을 하반기 핵심 어젠다로 추진하고자 한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융합과 상생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시스템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먼저 융합기술 연구개발(R&D)부터 융합제품 출시까지의 전 과정에서 칸막이와 규제는 제거하고 융합을 선도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과 중소·중견기업의 융합화 역량 강화를 지원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융합촉진법 등 산업 전반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아울러 상생대책은 중소기업의 현장애로를 없애고 중소기업의 성장성과 혁신성을 강화하는 기업 간 동반성장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의 혁신역량 제고를 위해 구조전환시스템을 구축하고 중소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인력 양성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의 제도적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제질서 변화를 읽고 융합과 상생을 실천하는 것이다.

로마는 제국을 분할통치하고 정치·행정·군사 사이에 칸막이를 치면서 융합역량이 저하되고 피정복민에 대한 승자의 관용이 인색해지면서 서서히 멸망해 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융합과 상생의 시대에 우리 모두 분발, ‘로마인 이야기’에 필적하는 이 시대의 ‘한국인 이야기’를 써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