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次惡을 가려내야 할 서울시장 선거/이성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0.24 18:12

수정 2014.11.20 13:16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라는 비유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서울시장 선출을 위한 보궐선거가 내일 실시된다. 인구는 20%에 지나지 않지만 정치·경제, 사회·문화적 의미는 80%를 넘어서는 곳이다. 서울이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야권 후보의 선거 슬로건이 생소하지 않은 이유다. 경제학적 용어인 파레토분포에서 말하는 80대 20 법칙을 유추하면 서울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와 지역간 불균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서울시장을 선출하는10·26 보궐선거는 존재하지 않았으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선거다. 산술적으로 계산한 10·26 보궐선거의 비경제성은 입만 열면 소중한 국민의 세금 운운하는 정치인들의 국민 혈세의 정치적 사용에 대한 무신경을 여실히 드러낸다.
오세훈 전 시장의 정무적 무감각과 소신으로 치장된 개인적 무책임이 야기한 이 선거는 무상급식 찬반 선거와 시장 퇴진에 따른 보궐선거 등 국민 혈세의 직접 비용만 수백억원이 넘어선다. 하지만 정책집행의 표류 등과 같은 공공적 기회 비용과 없어도 될 선거에 따라 촉발된 사회적 분열과 같은 민간의 소모성 비용을 생각하면 오세훈 전 시장 퇴진 이후 국가적으로 치러야 할 기회 비용은 수천억원에 달하리라 생각된다.

10·26 보궐선거는 대의정치의 근간이라 할 정당정치를 대표하는 정당들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노정한 선거다.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전 시장의 치기(稚氣)를 제어하지 못해 야기된 소모성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다시 표를 구걸하고 나서는 것은 무책임·무능·몰염치를 두루 갖춘 3류 정당임을 다시 한 번 자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야권 유일 수권정당임을 표방하면서 후보도 배출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처량함은 안쓰럽다. 내년 총선과 대선 이전 몰락할 대한민국 양대 정당의 모습이 그려진다.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다.

10·26 보궐선거는 사회적으로 꽤 쓸 만하다고 생각했던 두 후보의 치부를 드러내 우리나라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한계를 노정한 선거다. 도덕성이 겸비된 정치적 인재 고갈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이들 후보의 전력 시비에 따라 노정된 도덕적 문제들은 설혹 치유된다 하더라도 우리 청소년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비관적 사고 형성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 여권후보야 성향상 그렇다 해도 민주당 입당을 기웃거리며 범야권 후보를 표방하는 시민단체 후보의 정체성 논란은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건전한 시민단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단초를 제공한 당사자라는 오명을 짊어져야 할 것 같다.

10·26 보궐선거는 민주화 이후 건전한 시민운동을 주창했던 시민단체와 사회적 양심에 기초해 사회변혁을 주도한다는 각계 명망가들의 몰락을 야기한 선거다. 심정이야 어떻든 최대한 중립적 위치에서 사회적 조율을 중시하는 방향타 역할을 해온다고 믿었던 사회단체와 지도층 인사들의 최근 일탈은 도대체 우리나라에 양식을 구비한 사회지도층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야기한다. 최근 집권당 대표와 야권 후보를 지지하는 서울대 교수간에 벌어지는 트위터상의 논란은 아류(亞流) 사회지도층들이 보일 수 있는 천박함의 극치다. 

집권여당이면서도 없었으면 좋았을 보궐선거를 야기한 책임 주체인 한나라당이 다시 서울시를 책임지겠다고 표를 구걸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후보도 내지 못하는 주제에 시류에 빌붙는 처지로 전락한 민주당이 지원하는 사이비 시민단체의 전력을 가진 범야권 후보를 보는 것도 역겹다.

불가피하게 해외에 체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국민의 신성한 권리인 투표에 불참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이번 선거는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선거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일반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이번 선거는 차악을 가려내야 하는 선거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용렬함의 표출일 것 같아 한 표는 행사해야겠다. 투표를 해야 할 뚜껑에 인주를 바를 때까지도 누가 차악의 후보인지를 고민할 것 같다.
이래저래 심란한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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