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동네 미용사 아주머니의 복지관/이성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2.07 17:59

수정 2011.02.07 17:59

필자가 사는 집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이다. 이 지역은 관악구에서도 그 낙후도가 매우 심각해 2006년 10월 서울시 뉴타운개발 사업 지역의 하나로 선정돼 있다. 서울시의 계획에 의거해 이 지역은 2006년 10월 신림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잦은 추진위원회의 변경 등 거주민들의 알력으로 당초 예정된 만큼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편이다. 집 인근에는 오래된 미용실이 있다. 이제는 남자들이 이용원보다는 미용실을 더욱 자주 이용하는 편이고 필자도 그 중 하나다. 이곳에는 남자머리를 아주 잘 깎는 미용사 아주머니가 있다.

가격이 저렴한 이유도 있지만 내 머리를 깎아주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8년 전 이사한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약 10년 된다는 미용사 아주머니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약 60만원을 내면서 3평 남짓한 조그만 미용실과 지하방을 세 얻어 살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주머니는 남편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바깥일과 집안일을 돌본다고 항상 행복해 한다. 머리를 깎는 10분 남짓한 시간에 아주머니와 나는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줄 아는 탓도 있지만 아주머니와 필자의 연령대가 비슷한 이유로 주로 자녀 공부며 진학이 주된 대화의 소재거리다. 하지만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편이다.

해외 출장을 앞둔 며칠 전 머리를 깎기 위해 미용실에 갔을 때 아주머니가 나에게 꺼내든 이야기는 최근 정국의 논점이 되고 있는 복지에 관한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어보는 내용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의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잘 사는 편인 나에게 물어보는 저간의 사정이 아마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어려운 아주머니의 사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결국 나의 착각)에 나는 무상급식의 제한적 시행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모호한 대답에 아주머니는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작년까지 아주머니의 두 아들은 인근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사정을 잘 아는 아주머니 아들이 재학하고 있는 학교의 담임선생님은 아주머니 자녀들의 경우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상급식 대상자에 해당하니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단다. 아주머니가 자발적으로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자 결국 담임선생님이 직접 서류를 제출해 할 수 없이 원치 않는 혜택을 받았단다.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는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행여나 조금이라도 의존적 삶을 경험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주변에서 무자격임에도 서류상 이혼을 해서라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젊은 부부들의 사례와 분명히 자신보다 잘살고 있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복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이러한 우려는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보육수당 등 저소득층을 위한 각종 지원금을 도용한 사람만 약 18만명에 달하고 이들 '가짜 빈곤층'에 들어가는 돈만 연간 3288억원에 달한다는 뉴스는 아주머니의 걱정이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들도 정부에서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하냐는 세간의 극단적 논리는 차치하고라도 아무런 효용을 가지지 못하는 계층까지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야당과 진보측의 논리는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극단적 이념과 선거 때 언급한 자가당착적 논리로 이해하기에는 자기 궤변이 도를 넘은 것 같다.

무상급식의 제한적 시행으로 인해 수혜 대상 학생들이 행여나 겪을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자 한다는 논리는 우리 동네 미용실 아주머니와 같이 자존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어려운 계층의 독립심을 훼손하는 기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행여 어렵게 살면서도 자존과 독립적인 근로의식을 가진 우리 동네 아주머니와 같은 분들에게 최근 제시되고 있는 무상복지 시리즈들이 복지가 지향하는 사회 안정을 훼손하는 독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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