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시제품수준 로봇연구 그만해야/고경철 선문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3.24 16:51

수정 2014.11.07 00:08

이번 일본 원전사태를 보면 이런 사고를 대비해 좀 더 안전한 방재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과연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일본이나 우리나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에너지 빈국이다. 원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에너지원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철저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재난은 피할 수 없었다고 치자. 이후 벌어지는 인간과 원전과의 사투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평소 수치의 수천배에 달하는 방사능 피폭을 각오하며 사지로 뛰어든 원전기술자들의 용기와 애국심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보다 안전하고 과학적인 복구 방법은 없었을까.

이번 사태는 미리 철저하게 준비만 했다면 로봇기술로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재난 대비에서부터 복구까지 모든 안전시스템 구축에 첨단 로봇기술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스템 감시기능과 경보기능을 갖춘 자율 이동로봇이 원전시설의 지킴이 노릇을 할 수 있고 원격 제어로 작동하는 작업로봇이 원자로 내의 배관 밸브를 열고 닫으며 안전하게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 이런 기능을 가진 로봇들이 정부과제를 통해 개발된 바 있다. 문제는 시제품 수준에 지나지 않아 막상 일이 닥쳤을 때 별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미국 MIT공대에서 만든 극한작업 로봇은 실용성이 뛰어나다. 아이로봇이란 회사에서 제품화됐고 일본의 원전복구 지원을 위해 전격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로봇 강국이라 자부하던 일본에 쓸 만한 재난 극복 로봇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떨까. 5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를 계기로 재난 극복 로봇을 국가 과제로 도출해 연구개발에 연구소와 학교, 기업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바 있다. 재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탐색하고 구조하는 로봇에서, 원격으로 제어되는 극한작업 로봇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과제가 추진됐다. 그러나 역시 시제품 수준에 지나지 않아 이번 쓰나미 재해 현장이나 원전 재난 현장에 당장 투입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본 원전 사태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번 해보고 마는 시제품 수준의 연구'에서 정말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 과제만을 위한 로봇이어서 연구실을 벗어날 수 없다면 정부 시범사업과 같은 후속사업을 통해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실용적 로봇으로 진화해야 한다. 로봇과 같은 장치산업은 개발보다는 현장 피드백을 통해 보완되고 버전업되는 과정을 통해 기술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우리 로봇에 원천기술은 없다고. 그렇다. 오직 제품화되고 실용화될 때만이 진정 로봇기술이라 말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로봇개발정책도 이러한 측면에서 재점검이 필요하다. 그동안 과제는 성공했지만 산업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수많은 종류의 로봇 시제품만 쏟아낸 것은 아닌지 처음부터 사업 추진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냉철히 뒤돌아 봐야 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민간 산업계의 투자, 연구자들의 실용적 개발 의지와 함께 할 때 로봇산업의 미래가 밝아진다. 우리의 로봇들이 원전을 보호하고 재난을 대비하는 지킴이 역할을 하고 나아가 세계 각국의 재난 현장에 파견돼 생명을 구하고 재앙을 막는, 꿈 같은 그 날을 그려본다.

세계인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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