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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CEO 임기 22년, 정말 부럽다

유규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5.30 09:39

수정 2014.11.06 17:36

1989년말,한국 현지법인 설립을 준비중이던 세계 최대 산업용 펌프회사인 덴마크의 그런포스펌프에 250장의 이력서가 쌓였다.국내 기업의 해외지사장으로 수출 현장을 누비던 한 청년도 지사장에 응모했고,그런포스는 후보들을 추리고 추린 끝에 그를 지사장으로 결정했다.주인공은 이강호 현 한국그런포스펌프 사장.

그런데 계약 내용이 놀라웠다.무려 22년짜리 고용계약이었다.1990년 취임 당시 38세였으니 60세까지 경영을 맡으라는 얘기였다.한번 믿으면 좀체 사람을 안바꾸는게 유럽 기업 스타일이라지만,처음부터 22년짜리 계약을 맺는 것은 듣도보도 못한 일이었다.
CEO를 맡은 이 사장은 뛰어난 실적으로 그런포스의 믿음에 답했고,지금은 대만 법인까지 맡아 경영하고 있다.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CEO에겐 임기가 있다.물론 오너 CEO라면 예외지만.잘나가는 기업의 경우 십중팔구 임기는 늘어난다.유럽 최대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그룹은 최근 2007년 취임한 마틴 빈터콘 회장의 임기를 5년 늘려 2016년까지 임기를 보장했다.구조조정 해결사로 이름을 날린 르노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은 2001년 이후 11년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GE의 잭 웰치는 20년을 군림했다.

그렇다면 국내 CEO들은 어떤가.재벌닷컴이 992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최근 10년치를 조사해 봤더니 평균 임기가 2년7개월이었다고 한다.글로벌 기업엔 한참 못미치지만,그리 짧은 기간도 아닌 것같다.CEO가 바뀌는 이유는 대부분 ‘실적’이다.재벌닷컴 분석 결과 지난 10년간 CEO를 다섯번 바꾼 기업의 매출과 순익 증가율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4회 바꾼 기업은 그에 못미쳤고,2회 바꾼 기업은 한참 뒤쳐졌다고 한다.고인 물이 썩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에 물갈이를 해주는 원리일까?

그렇다고 자주 바꾸는게 모든 걸 해결해주지도 않는다.6∼7회로 더 자주 바꾼 기업은 실적이 따라주질 못했다.이런 회사는 CEO의 능력이 아닌 다른 문제점이 있는데 찾는데 실패한 케이스다.

우리나라에도 장수 CEO가 있지만 대부분 오너다.
그럼 월급쟁이 CEO의 장수는 어려운 일일까.전문가 의견은 “CEO 임기는 기업마다 시대마다 천차만별”이란다.산업의 성격과 해당 기업의 전략적 지향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개인의 능력이 플러스된다.결국 장수CEO가 되려면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는 것인가.

/ryu@fnnews.com 유규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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