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대한민국 빚이 3000조원이라는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11.04 18:03

수정 2012.11.04 18:03

대한민국이 걸머진 빚이 3000조원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경제활동의 핵심 주체인 국가·기업·가계가 진 빚을 합하면 6월 말 현재 2962조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234%에 이른다는 것이다. 빚은 통상 GDP 대비 비중으로 경중을 따진다. 이 기준으로 보면 국가채무는 30% 중반으로 가장 양호한 편이다. 반면 가계부채는 GDP 대비 88%를 넘어섰고, 금융사를 제외한 일반기업과 공기업의 부채는 108%로 세자릿수를 기록했다.

GDP 대비 비중이 대략 80~90%를 초과하면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가계·기업부채의 경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빚은 모든 위기의 출발점이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역저 '이번엔 다르다'에서 "국가든 개인이든 은행이든 간에 부채 누적을 통한 과도한 외부 자본의 유입은 곧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로고프 교수는 지난 800년 동안 전 세계 66개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빚더미에 앉은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모기지, 곧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도화선이 됐다.

외환위기 때 된통 혼이 난 한국 경제는 이후 기업부채 비율을 대폭 줄였으나 어느덧 경각심이 사라진 듯하다. 남의 돈으로 몸집을 불리려는 무리한 인수합병(M&A) 시도도 잇따랐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08년 100%를 넘어선 뒤 줄곧 세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외환위기 이후 가계대출이 줄자 은행 등 금융사들은 대신 가계대출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주택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이 급증했고 이때 돈을 빌린 이들 중 상당수가 지금 하우스푸어의 수렁에 빠져 있다.

빚은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다. 빚덩이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빚쟁이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자를 갚느라 가처분 소득이 줄기 때문이다. 소비 저하는 기업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실적이 나쁘면 투자할 여윳돈이 없으니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악순환이다.

3000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빚은 지도자의 용단 없이는 풀 수 없는 국가적 난제다. 불행히도 우리는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빚을 줄이려면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12월 대선에 나선 어떤 후보도 유권자들이 듣기 싫어할 말은 입에 담지 않는다.
그 대신 달콤한 복지 공약만 남발한다. 빚을 줄여야 할 판에 돈을 더 쓰겠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슬로건으로 공화당의 조지 H. 부시 후보를 눌렀다. 왜 2012년 한국 대선에선 "문제는 빚이야, 이 바보야'라는 슬로건이 나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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