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시간제 일자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05 16:42

수정 2013.11.05 16:42

박근혜정부의 주요 국정목표인 '고용률 70% 달성'의 관건은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에 있다. 집권 5년간 만들어야 할 238만개 일자리 중 93만개가 시간제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청년층뿐 아니라 학업, 육아나 점진적 퇴직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장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게 이 제도의 원래 취지다. 정부는 이들이 자기 상황에 맞는 시간 동안 일을 하되 시간당 임금이나 승진, 정년에서 전일제 일반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래야만 반듯하고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제 일자리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처음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공공기관들이 당초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95개 공공기관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14년 잠정 채용계획에 따르면 내년에 시간제 근로자를 채용할 계획이 있는 곳은 136곳으로 모두 1027명을 뽑을 예정이다. 또한 내년에 10명 이상 시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공공기관 24개 중 23개가 신입사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기업은행만이 직장생활을 중단한 여성을 중심으로 하루 4시간 일하는 창구직 텔러를 뽑을 계획이다.

공공기관들이 여성·고령자 등 경력직 채용을 외면한다는 것은 결국 질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게 되리라는 우려를 낳는다. 하위직을 시간제로 메우겠다는 계획이어서다. 실제 공공기관이 제시한 시간제 업무는 간단한 상담·접수 및 서비스 응대, 사무 지원, 순찰·경비 같은 단순 허드렛일이 주종을 이뤘다. 8곳은 시간제 정규직 모집 대상을 고졸자로 지정했다. 이렇게 가면 시간제 일자리는 이명박정부 때 대대적으로 시행했다가 실패한 청년인턴제와 같은 꼴이 날 수도 있다.

제도 시행에 대한 공공기관의 준비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더군다나 정부는 최근 각 기관에 2017년까지 시간제 근로자 채용 비율을 할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첫 실험이 이처럼 임시변통으로 진행돼서는 곤란하다. 9000명을 채용할 공공기관부터 삐걱거린다면 나머지 92만명을 채용해야 할 민간기업에 어떻게 이 제도를 권장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현실과 맞지 않는 무리한 인원 할당을 접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의 양에 너무 집착하면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들은 시간제 일자리에 맞는 새로운 직무를 개발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를 덮어놓고 시행부터 한다면 그 결과가 너무나 뻔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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