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잊혀질 권리’ 강 건너 불 아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02 16:36

수정 2014.06.02 16:36

'잊혀질 권리'를 요구하는 누리꾼들이 세계 최대 검색업체 구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구글이 온라인 창구를 개설한 첫날(현지시간 5월 30일) 유럽인 1만2000명이 자료삭제 신청서를 냈다. 유럽 검색시장은 미국 구글이 장악하고 있다. 사용자 수는 5억명으로 추산된다. 일단 물꼬가 트인 만큼 자료삭제 요청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보인다.

발단은 이렇다.
1998년 스페인의 한 신문이 곤살레스라는 변호사가 빚 때문에 집을 공매에 내놓았다는 기사를 웹사이트에 실었다. 이후 구글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파산 소식이 제일 먼저 떴다. 곤살레스는 기사를 삭제하라는 소송을 냈고 유럽사법재판소(ECJ)는 곤살레스 편에 섰다. 지난달 13일 ECJ는 구글에 자료삭제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온라인 통로를 만들어 자료삭제 요청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갈등의 뿌리는 깊다. 알 권리냐 잊혀질 권리냐, 표현의 자유냐 프라이버시 보호냐를 놓고 미국·구글과 유럽이 맞서 있다. 혁신을 중시하는 미국은 잊혀질 권리의 남용을 우려한다. 억압적인 정권·독재자가 인터넷 자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패한 공직자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빠져나갈 구멍도 생긴다.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잊혀질 권리가 신생 인터넷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유럽은 '디지털 주홍글씨'가 초래할 부작용에 주목한다. 원치 않는 개인정보가 인터넷 공간에 떠다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독점을 이유로 구글을 강제분할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다. 유럽은 미국 정보기관이 자행한 광범위한 온라인 감시망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검색시장을 온전히 구글에 내준 유럽과 미국 간 감정 대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잊혀질 권리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빛바랜 자료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사사롭게는 옛 애인과 찍은 사진·동영상도 골칫거리다. 인터넷은 무한복제가 가능하다. 제 홈페이지에서 다 지워봤자 아무 소용없다. 이미 자료는 인터넷 정보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뚜렷한 기준이 없다. 자료삭제 요청을 받아들이는 기준, 공직자의 정보공개 범위 등을 놓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대법원은 가족이 남긴 e메일·홈페이지·블로그·페이스북 계정 등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상속권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도 이를수록 좋다.
네이버 등 검색업체들의 발 빠른 대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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