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대주단 가입 이대론 안된다/정훈식 건설부동산부장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1.24 17:24

수정 2008.11.24 17:24



건설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대주단(채권단) 가입 여부를 놓고 정부 및 금융권과 건설업계 간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은 건설업체들을 불러모아 설명회를 연 데 이어 주택 건설단체에 대주단 가입을 독려하는 공문까지 보내는 등 ‘강온 양면작전’을 펼치면서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건설사들은 이해타산을 따지면서 여전히 대주단 가입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는 사이 ‘을’의 입장인 건설사들의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대주단 가입 독려에다 ‘발등의 불’인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주단 가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말 못할 속사정 때문에 이를 주저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그토록 대주단 가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뭘까. 상대적으로 자금난이 덜하고 이런 상황을 최소 1년 이상은 버틸 여력이 있는 대형 건설사들은 대외신인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주단 가입=부실기업’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개연성이 있어 해외건설 공사 수주에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안 그래도 일부 국제 신용평기관이 최근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춘 가운데 공사 수주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상황에서 해외 발주처나 경쟁기업들에 대주단 가입 사실이 알려져 업체마저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힐 경우 받을 불이익은 엄청나다.

건설업체가 더 우려하는 것은 대주단에 가입할 경우 회사 기밀 등 실질적인 경영자료를 모두 내놔야 하고 이렇게 될 경우 금융기관에 ‘책’을 잡혀 경영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형 건설사 중에는 내심 대주단에 가입해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면죄부도 받고 싶어하지만 경영권 위협을 더욱 겁내고 있다.

심각한 자금난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상당수 중견 건설사들은 ‘대주단 가입=회사 정리’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수십년간 일궈 놓은 회사를 대주단 가입으로 빼앗길 수 없다는 오너들의 우려가 깊숙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견 건설사들에 대주단 가입은 곧 ‘불쏘시개를 들고 불에 뛰어드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 상황에서는 건설사들의 대주단 가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건설사들의 대주단 가입이 지지부진한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와 금융권의 ‘전술 부재’다. 애초에 정부와 금융권은 건설사들을 대주단에 가입시켜 위기에 빠진 건설사들을 구하자는 ‘전략’은 있었지만 대주단 가입으로 건설사들이 어떤 곤경에 처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세부 내용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채찍’과 ‘당근’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 ‘채찍’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래서 부실업체의 퇴출이 대주단의 주업무인 것으로 인식하게 했고 이는 결국 건설사들의 심리적 부담감을 키웠다.

사실 건설사들은 대주단에 대해 불신이 크다. “대주단이 채권 만기를 연장해 준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건설사의 경영 전반을 파헤치고 대출금을 회수하자는 것 아니냐”는 대형 건설사의 한 최고경영자(CEO)의 말이 이를 방증한다.

정부와 금융권은 건설사들의 대주단 가입을 유도하고 건설산업의 효율적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먼저 명확하고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가입 계약서류 용처 등에 대해 신사협정을 맺어야 한다.

먼저 대주단 가입기준을 명확히 내놔야 한다. 지원대상 건설업체의 선정기준과 만기 연장 또는 신규대출의 지원기준 등 가입을 원하는 건설사들이 예측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어 평가에서도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신용평가기관의 회사채 신용등급에 너무 의존할 경우 자칫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멀쩡한 회사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주단에 가입한 건설회사에 대해서는 가입 여부에 대한 철저한 비밀보장과 경영자료의 활용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고 이를 대주단 가입협약서에 명시하는 등의 대책도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눈치만 살피며 시간을 끄는 사이 멀쩡한 건설사들마저 동반 부실화하고, 이렇게 되면 건설산업 전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
건설사 구조조정이 한시가 바쁜 이유가 여기에 있다.

/poongnu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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