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월드리포트

[월드리포트] 중국은 민주주의 실험중?/최필수 베이징 특파원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3.25 17:58

수정 2010.03.25 17:58

양회(兩會)는 쇼다. 만약 공무원들과 관변 단체장들이 모여 국민을 대표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달리 무슨 말로 부르겠는가. 더구나 그들이 집권당의 당원이라면.

올해도 지난 3월 초에 치렁치렁한 소수민족 전통의상의 여성들이 인민대회당 포토라인을 장식했다. 회의장의 꽃 역할을 할 그들도 엄연히 5224명(전인대 2987명·정협 2237명)의 양회 대표에 포함된다.

양회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를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전인대는 인민을 대표하며 표결 권한을 갖는 우리의 국회와 형식상 동일한 조직이다. 정협은 각계를 대표하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조직이다.

이를테면 연예계, 종교계, 경제계 등이 망라돼 있어 장쯔이 같은 유명 영화배우도 정협위원이다. 정협은 신중국 성립 당시 공산당이 집권 체제를 갖추기 전 비공산당계 인사들을 대거 끌어들이면서 발족됐으나 공산당의 일당 지도체제가 확립된 오늘날은 권력의 장식품이 됐다.

2010년 통계를 보면 전인대 대표 중 85.3%가 현직 관원이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도 인민대표다. 이들이 쇼의 주인공이며 기업가와 농민(9.4%), 공공기관 대표(4.9%), 인민해방군 대표(0.4%) 등이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이들은 별도의 활동비가 없으며 모두 겸직이다. 의정과 행정이 하나라는 이른바 의행합일(議行合一)이다. 이들은 모여서 무엇을 하는가.

첫째, 보고를 '듣는다'. 대회 주석단, 전인대 상임위, 국무원, 중앙군사위, 최고법원, 최고검찰 등 여섯 기구가 하는 '육대 보고'를 다같이 듣고 기타 분야별 위원회의 보고들을 나눠 듣는다.

이 가운데 총리가 하는 국무원 사업보고가 백미다. 그리고 각 보고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한다. 1982년에 첫 기권표가, 1988년에 첫 반대표가 나온 이후 기권 및 반대의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 올해의 경우 평균 찬성률은 약 75%였다고 한다.

갈수록 쇼의 모양새가 그럴싸해지고 있는 셈이다. 청취와 보고 후 대표들도 의견을 개진한다. 올해 전인대에선 총 506개의 의안이 성립됐다. 의행합일이니만큼 안건이 제출되면 거의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행정적으로 실현된다. 다만 시골학교 교사와 같은 진짜 인민대표들은 행정자원이 없어 의안을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국유기업 대표나 지방정부 관료들은 의안 제출 건수가 많다.

대부분이 공산당원인 전인대와 달리 정협위원 중 공산당원 비율은 40%가 채 안 된다. 중국에는 8개 군소 정당이 존재한다. 2007년 완강 치공당 주석이 과학기술부 부장에 임명되면서 비공산당원 장관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정협은 행정권력에서 배제된 군소정당들의 놀이터다.

이러한 당파 구성은 1949년 제1기 정협 때부터 지켜진 전통이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표결 기능이 없는 기구이니만큼 굳이 과반수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물론 이것도 전체 인구의 약 5.7%에 불과한 공산당원 비율을 놓고 보면 불공평하긴 하다.

최근 양회 대표들의 토론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양회 기간 중 홍콩 봉황TV가 정협위원들을 초청해 벌인 공개 토론회 자리였다. 방청객으로 초대받은 기자는 정협위원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지 깜짝 놀랐다.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런즈치앙 화위안그룹 회장은 부동산 문제의 근원은 정부의 부패라고 직언을 날렸다. 량지양 중국과학원 연구원은 업체들의 폭리가 진짜 문제라고 맞받아쳤다. 지아캉 재정과학연구소 소장은 호화주택부터 주택보유세를 징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콩 방송국의 카메라 앞에서 얼굴이 벌개져 마이크가 꺼진 줄도 모르고 열변을 토하는 정협위원들을 보니 중국중앙방송(CCTV) 속에서 각잡고 앉아 총리의 말씀을 경청하던 이들의 또다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씨앗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집정은 아직 도전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민은 공산당의 영도를 지지한다'는 60년 묵은 전제가 갈수록 막연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공산당은 영리하게도 지난해 9월 4중전회의 주제를 '당내 민주주의'로 설정하고 잠재적 도전을 체제 안에서 소화하려는 기획을 하고 있다. 양회는 쇼다.
그러나 갈수록 리얼리티가 짙어질 것이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