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아침] 누굴위한 통신품질 평가인가/이구순 정보미디어부 차장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5.22 17:29

수정 2009.05.22 17:29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3세대(G) 이동전화와 초고속인터넷 품질을 평가해 잇따라 결과를 공개했다. 평가결과는 한마디로 “다 좋다”였다.

3G 이동전화에서 SK텔레콤과 KTF는 각각 99.66%와 99.35%의 통화성공률을 기록했다. 이동전화 통화를 시도했을 때 100%에 가까운 완벽한 품질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초고속인터넷도 100Mbps속도라고 광고하는 상품들이 평균 92Mbps의 속도를 냈다. 인터넷 속도면에서는 광고를 완전히 신뢰해도 좋은 수준이라는 말이다.


방통위는 이 평가를 하면서 “소비자들이 보다 나은 품질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품질이 좋지않은 부분은 투자를 확대하도록 유도하는게 품질평가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이런 목적의 조사가 필요할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부의 공식적인 품질평가에서 평균 90점을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통신업체들은 오히려 “더이상 통신품질을 높이기 위해 추가로 투자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며 만면에 웃음을 짓게 됐다. 정부가 통신업체들에게 추가투자 회피를 위한 면죄부를 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또 통화품질을 조사해 소비자에게 선택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발상은 시작부터 판단착오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요즘 이동전화나 초고속인터넷을 가입하면서 통화품질을 따지는 소비자가 있을까? 휴대폰 보조금과 초고속인터넷 경품의 종류가 서비스 선택을 좌우하는 것을 방통위 직원들도 다 알텐데….

방통위는 3G 이동전화 품질평가에만 4억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러나 방통위가 정한 조사목적은 두가지 모두 현실성 없는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반면 통신업체들은 조사결과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느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 초고속인터넷 업체는 방통위의 조사결과가 21일 발표됐는데 22일부터 당장 ‘정부 공식 평가에서 100점의 성적표를 받은 서비스’라며 라디오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결국 방통위는 스스로 정한 조사목적은 이루지도 못하고, 통신업체들에게 마케팅 수단을 만들어주는데 귀한 예산을 쓴 셈이됐다.

통신업계에서는 통신 품질평가를 둘러싸고 “괜한 평가자료로 공무원들의 행정실적을 자랑하려는 책상머리 정책 아니냐”거나 “통신업체에 대한 규제권을 폼나게 휘둘러 보려는 생각아니냐”는 둥 말이 많다.

사실 이런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변별력 없고 소비자에게 정보도 되지 않는 품질평가로 방통위가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2000년대 초반에도 해마다 품질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런 지적이 지속되면서 품질평가를 중단했던 일이 있다.

방통위는 내년에도 통신품질 평가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내년이라고 딱히 변별력 있는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조사계획을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방통위에는 수많은 소비자 민원과 시장고발이 접수된다.
초고속인터넷을 해지하는데 부당한 위약금을 요구한다거나,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여러 형태의 불법 영업행위에 대한 것이다. 민원의 대부분은 방통위가 일일이 조사를 하지 못한채 민원접수에만 그치는 게 다반사다.
예산과 인력 부족이 이유다.

그렇다면 쓸모가 덜한 통신품질평가 예산을 소비자 민원에 대한 조사와 해결을 위한 비용으로 돌리는 건 어떨까? 또 소비자들이 정말 실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점을 찾아 해결하는 용도로 쓰면 어떨까?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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