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의 시대다. 또 하이브리드의 시대다. 혼합이 이어진다. IT, 생명공학을 비롯해 예술에서도 ‘섞는 것’이 추세다. 자동차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승용차 같은 안락함과 웨건의 실용성 거기에 SUV의 든든함까지 갖춘 차가 등장하는 이유다.
최근 크로스오버 자동차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졌다. MPV, CUV 등 다양한 이름을 붙인다. 스바루의 ‘아웃백’ 역시 크로스오버다.
스바루 아웃백은 1995년 첫 등장했다. 스바루의 세단 ‘레거시’에 트렁크를 넓힌 웨건 형태였다. 그래서 이름도 아웃백이 아닌 ‘레거시 그랜드 웨건’이었다. 세단의 장점과 넓은 공간까지 갖춘 차로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조금씩 커지고 넓어지고 높아지더니 4세대에 이르러 지금의 ‘아웃백’이 탄생했다. 세단 ‘레거시’를 바탕으로 하지만 더 길고 높다. 그래도 SUV라 부르긴 낮은 1668.8mm의 높이. 타고 내리기 편리하고 오프로드도 달릴 수 있는 독특한 높이다.
스바루를 얘기하면 4륜구동과 박서엔진을 먼저 얘기하게 된다. 또 안정적인 코너링과 험로를 통과하는 오프로드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이번 시승에는 ‘오프로드’에 초점을 맞췄다.
얌전하게 생긴 아웃백을 몰고 경기도 포천으로 달렸다. 오프로드 마니아 사이에 유명한 ‘오뚜기령’을 오르기 위해서다. 근처에 이 길을 개척한 8사단 오뚜기 부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프로드 마니아들이 계절을 불문하고 찾아와 나름대로 공략 코스가 있다지만 세단에 가까운 아웃백이 길을 오를지 궁금했다.
오뚜기령 초입 까지는 막힘없이 도로를 달렸다. 3.6ℓ 260마력(hp)의 가솔린 엔진과 자동5단의 풀타임 4륜구동 변속기는 여유로운 승차감을 제공한다. 1시간여 길을 달리는 동안 기록한 연비는 7.7㎞/ℓ수준으로 배기량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수준이다.
오뚜기령이 시작됐다. 오프로드다. 이곳을 오른 ‘아웃백’은 들어본 바 없다. 보통 코란도, 갤로퍼, 테라칸, 무쏘 등등 국산 SUV를 비롯한 4륜구동 오프로더가 찾는 곳이다. 흙길로 접어들어 정상까지는 6㎞ 구간이다. 돌무더기와 얕은 진흙길을 무난하게 통과하니 첫 번째 난관이 닥쳤다.
물에 휩쓸린 흔적 때문인지 길 한가운데가 움푹 파였다. 통과할 수 있는 길은 산을 향해 차의 절반을 걸치고 위태로운 자세로 지나야 한다. 전진과 후진을 몇 차례 반복했다. 이어진 돌 언덕, 4바퀴가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다. 몇 차례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자 흙먼지를 날리며 언덕에 올라선다. 스바루 4륜구동의 힘이다.
최근 출시되는 전자제어식 4륜구동 차량들은 오프로드에 약하다. 평소에는 앞바퀴만 구동되고 미끄러질 경우에만 가변적으로 출력을 제어한다. 이런 경우를 위해서 ‘디퍼런셜 락’을 제공하는데 버튼의 용도를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4륜구동이라해서 모두 산길을 오른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4바퀴 모두에 고루 힘을 배분해야 하는 경우에 전자제어식 4륜구동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구형 코란도, 갤로퍼가 오프로드를 잘 타는 이유다.
반면 스바루의 4륜구동은 항시 구동된다. 언덕에서 미끄러지면서도 꾸준히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간다. 마치 마법 같은 일이다. 눈 쌓인 언덕이나 진흙, 모래사장에 빠져봤다면 자동차가 얼마나 허무하게 갇혀버리는지 알 것이다.바닥에 돌들은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지상고 200㎜에 맞춰 돌들이 늘어선 것일까.
출렁출렁 좌우로 흔들리며 오프로드를 끝없이 올라갔다. 편도 6㎞의 길이지만 1시간 가까이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오뚜기령 정상에는 이른바 ‘인증샷’을 위한 공간이 있다. 정상에 오르니 오프로드 튜닝을 한 자동차 서너 대가 모여 있고 가운데 돗자리를 깔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들이 질문이 쏟아졌다.
“이 차가 뭐에요?”, “승용차가 여길 올라와요?”
안타깝지만 ‘스바루’라는 회사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더구나 별 여섯 개의 엠블럼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데 승용차처럼 생긴 이 낮선 차를 산꼭대기에서 만났으니 이들의 놀람도 이해할 수 있다.
아웃백의 겉모습은 오프로드를 달리기에 적합하진 않다. 전장이 4780㎜로 세단인 레거시보다 길고 세단에서 물려받은 얌전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반면 내장은 오프로드를 위해 만들어진 차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수평대향 박서엔진과 풀타임 4륜구동은 낮은 무게중심에 강한 힘을 전달한다. 알루미늄헤드를 채용한 엔진과 경량화에 성공한 바디는 가볍고 단단한 차를 가능케 했다. 1645㎏의 공차중량은 이 차의 큰 장점이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오른 길을 거슬러 내려왔다. 아스팔트 도로에 올라서는 순간 차는 편안한 세단으로 변했다. 속도를 올리자 바퀴에서 진흙 튀는 소리가 ‘타타닥’ 들려온다.
과연 아웃백의 놀라운 성능을 일반 운전자들이 얼마나 사용할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조건을 제공한다. 겨울에는 폭설이 내리기도 하고 여름에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전국의 많은 도로가 산을 깎아 만들었고 오토캠핑을 비롯한 레저 인구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도시에 살고 있는 ‘크로스 오버’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나라다.
삶의 형태가 크로스오버일진데 당연히 크로스오버 차량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제기되는 아쉬움이 있다.
3.6모델이 4790만원, 2.5모델이 4290만원에 이르는 가격이다. 이 가격이면 국산 SUV를 사고 경차를 한 대 더 살 수 있는 가격이다. 국내에는 스바루코리아에서 판매와 사후정비를 담당하지만 아직 전국으로 퍼지지 못한 관리망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car@fnnews.com 이다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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