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서 세계의 시장으로

파이낸셜뉴스       2001.12.31 07:15   수정 : 2014.11.07 11:35기사원문



【베이징=한·중공동취재단】지난 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불을 지핀 지 23년이 지난 중국 전역은 마치 끓기 시작한 거대한 가마솥의 물처럼 ‘비등(沸騰)’하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베이징을 비롯해, 염전지역이 공업단지로 변모한 톈진시 경제기술개발구,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는 허베이성 내륙지역, 한차례 개발붐의 실패를 딛고 재도약하려는 하이난성, 전세계 시장에 온갖 잡화를 공급하는 저장성의 각종 도매시장, 한국 등으로부터의 외자도입 확대를 통해 다른 연안지역을 추격하려는 산둥성 등 취재팀이 돌아본 중국 모든 지역이 활기에 넘쳐 있다.

상하이가 급속한 경제성장의 힘으로 비교적 단시일 안에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면, 베이징은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에 따라 서서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꿔가고 있다.

톈안먼(天安門) 광장 앞을 가로지르는 창안제(長安街) 양쪽에는 초현대적인 건물들과 고전적인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아직 도심 한가운데 허름한 주거지들이 산재해 있고 통신이나 교통 등 기간설비의 구축이 부족한 상태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완전히 면모를 일신하게 될 것임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한국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톈진시의 신기술기업협회장인 팡진화(龐金華) 박사는 “첨단기술 개발구에서는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첨단 부문에서 중국의 기술이 미국이나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며 “더 이상 중·저급 기술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베이징,톈진을 둘러싸고 있는 허베이성은 90년대 중반부터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 곳곳에서 개발붐이 일고 있다. 9000만명 이상의 인구를 안고 있는 산둥성은 칭다오(靑島), 옌타이(煙臺) 등 해안도시의 개혁개방의 성과가 내륙으로 확산되면서 성 전체에 뜨거운 개발열기가 감돌았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베이징 동쪽 오피스빌딩가 뒤쪽의 의류센터 ‘뉘런제(女人街)’를 둘러봤다. 지난 10월 오픈했는데 2개월만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지방에서 물건을 사러오는 버스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유통센터로 자리잡았다. 1년전 대규모 꽃시장을 조성한 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자 앞쪽에 의류유통센터를 계속 늘려가고 인근에 대규모 주차장도 자리를 잡았다. 중국은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 몇년 걸려야 형성될 대규모 재래식 시장마저 몇개월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솜씨를 보여줬다.

세계의 유통업체들은 확대되고 있는 중국시장에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형 소매업체인 까르푸는 톈안먼을 중심으로 펼쳐진 베이징 시내 4개소에 체인을 개설, 10여개 중국 유통업체들과 중국 소비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지역에서는 고층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중국정부의 개인주택보유 촉진책과 국민소득증대로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승용차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어 조만간 중국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마이카, 마이홈’ 붐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소비가 확대되고 있는 휴대폰의 경우, 지난해 7월 중국 휴대폰 가입자는 1억2060만명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중국정부는 2005년에 휴대폰 사용자가 2억6000만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변화는 이미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이 머지않아 ‘세계의 시장’을 겸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세계 주요기업들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전후해 중국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13억명의 거대시장을 시야에 넣은 중장기적 전략에 따른 것이다.

또 세계 주요 기업들이 중국으로 집중되면서, 중국시장은 세계 기업들의 전쟁터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시장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시장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저렴하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을 연구개발 기지로 삼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무역의존도는 35%를 웃돌았으며,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투자유치국이 됐다. 세계의 소비재 생산대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처음으로 공급부족경제에서 과잉경제로 돌입했다. 과잉설비로 상품생산이 넘쳐나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수자우위 시장이 확립된 것이다. 이는 시장의 원리, 경쟁의 원리가 보다 강력하게 작용해 중국경제의 국제화, 공업화, 시장화를 보다 가속시키게 됨을 의미한다.

중저가 제품의 경우 완전자유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다른 외국기업뿐 아니라 경쟁력을 높인 중국현지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베이징에서 만난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삼성이나 LG와 같은 국내 대기업들 가운데 현재 중국에서 이익을 내고 있는 업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고소득층들은 소니나 필립스와 같은 유럽이나 일본제품을 선호하는 한편, 일반 소비자의 경우 한국제품보다 질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값이 월등히 싼 중국제품에 손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광대한 중국에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금액의 ‘전략광고비’를 쏟아붓고 있어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버티는 것은 제3국 수출로 손실을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임원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난해말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시장에서 고급제품으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같은 속사정이 배경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휴대폰 애니콜의 경우 고가화·고급화 전략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기업을 따라 함께 진출한 부품업체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납품가격 인하압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머지않아 중국산 부품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부품이나 제품의 개발 및 중국에서의 경험을 배경으로 중국 내수시장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외형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중국인의 의식면에서 보다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산둥성에서 합작으로 고속버스 사업을 하고 있는 제우고속의 권태진 총경리(사장)는 중국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에 대해 ‘과감하고 신속한 젊은피 수혈’을 든다. 주룽지 총리의 작은정부 추진 발표 이후 중앙정부의 인원삭감과 젊은층의 기용이 이뤄진 데 이어 최근 지방정부 및 각 국영기업에까지 이같은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국영기업들이 성과급을 도입하고 있으며, 주요 직책의 인사에 경쟁원리를 도입해 30∼40대가 대거 등용돼 세대교체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한번 들어가면 정년 때까지 자리가 보장된다는 국영기업의 ‘철밥통’은 이미 옛날 이야기다. 저장성 최고의 비단공장이라는 항저우두진성(杭州都錦生) 유한공사의 왕종화(王中華) 총경리는 국영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한 이유를 묻자 주저없이 “국영기업 상태로 그대로 가다간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왕총경리는 1300명의 직원을 300명으로 줄였다.

물론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국유기업 개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많은 경제관습이 온존하고 있으며, 법 정비가 제대로 안된 점이나 많은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 금융시스템이나 유통시스템의 개혁이 뒤진 점, 지역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등의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비행기나 기차 창 밖으로 내다본 농촌이나 도시 변두리에는 개혁·개방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는 지역이 아직도 적지 않음을 드러냈다.

또 WTO 가입은 중국에 다양한 기회와 함께 리스크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만나본 중국정부관리나 기업가들은 리스크보다는 새로운 기회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중국경제가 국제경제에 편입됨으로 인해 개혁·개방을 더욱 가속시켜 결국 중국의 근대화 과정을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저장성 개혁발전연구소의 줘융량(卓勇良) 소장은 중국의 WTO 가입이 갖는 의미에 대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선언 이후) 두번째 개혁·개방이며 고속도 개방”이라며 “영원히 시장경제체제를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인 성과”라고 강조했다.

2년 전에 36세의 나이로 중국최대 PC메이커 롄샹(聯想)의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양위안칭(楊元慶) 총재는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에서 WTO 문제는 이미 90년에 끝난 일”이라고 말한다. “중국정부가 첨단기술 수입허가제를 폐지한 이후 3∼4년간 외자기업이 중국의 IT시장을 석권했는데 롄샹은 이같은 경쟁 속에서 단련되고 성장한 만큼 WTO 가입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중국경제와 중국기업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에 피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으로, 동시에 커다란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대중국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위해선 중국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차이, 중국시장과 상관행의 특성, 사회체제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이전처럼 무턱대고 중국에 진출했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국에 먼저 진출한 기업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정부 역시 중국의 지역 특성에 맞는 대중국투자 및 경제협력 방안 및 지원책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시리즈 싣는 순서

1회 :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3면)

취재일정/ 취재루트(지도) / 리얼량 시장보 사장 인터뷰/ 협찬사 로고(4면)

2회 : 톈진(1)-한국, 일본, 중국을 연결하는 ‘허브도시’

3회 : 톈진(2)-연안개발구 ‘첨단기술만 오라’

4회 : 톈진(3)-농촌기업도 ‘외자유치만이 살길’

5회 : 허베이성(1)-개혁개방, 이제부가 시작이다

6회 : 허베이성(2)-중국의 포항 ‘철강도시 한단’

7회 : 하이난성(1)-중국 최초·최대의 개발구 하이난성

8회 : 하이난성(2)-동양의 하와이를 꿈꾼다

9회 : 하이난성(3)-재도약을 위한 힘찬 비상

10회 : 저장성(1)-1500년 전통의 저장상인 저력

11회 : 저장성(2)-소상품의 천국 ‘이우시’

12회 : 저장성(3)-절강대학교 한국연구소가 바라본 한·중·일

13회 : 산둥성(1)-‘산둥거지’에서 ‘산둥부자’로

14회 : 산둥성(2)-산둥성 발전의 숨은 역군, 코리아

15회 : 산둥성(3)-산둥의 산업지도가 바뀐다.

16회 : 산둥성(4)-산둥의 기대주 ‘대우중공업’

17회 : 베이징(1)-개혁·개방의 조율사, 중앙정부

18회 : 베이징(2)-중국 IT산업의 산실

19회 : 베이징(3)-WTO가입은 개혁·개방의 마무리 수

20(마지막)회 : 파이낸셜뉴스·인민일보시장보가 함께 한 8000km 대장정

■한·중 공동취재단 명단

◇취재단장=파이낸셜뉴스 이도훈 산업부 부장

◇파이낸셜뉴스=장인영 도쿄특파원, 임관호 증권금융부 차장, 김수헌 김종길 조정호기자(산업부)

◇인민일보시장보=양보(揚勃) 주임, 가오수이전(高秀珍) 주필, 왕쑤이(王■伊)주임기자, 쑨난(蓀南) 기자, 장메이위(姜美玉) 해외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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