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취임한 1년 전을 생각하면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9일 국무회의 발언이다. 7~8일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이 잘한 분야로 외교성과를 꼽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응답자 72.2%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시작된 연쇄외교가 일차적 결실을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진보 성향 응답자들도 윤 대통령의 외교력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국가적 관계 강화와 함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친밀도가 높아진 데는 윤 대통령의 개인적 친화력이라는 '외교력'도 한몫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아쉬운 점은 우리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한 윤 대통령의 친화력이 작동을 멈춘 사실이다. 앞서 본 취임 1년 소감은 국무회의가 아닌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는 게 더 적절한 것이었다. '과유불급'이었던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국민이 윤 대통령의 육성을 직접 들을 기회가 사라졌다. 국무회의나 비서관회의에서의 발언, 해외 언론 인터뷰로 접하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한 기자들과의 문답 혹은 적어도 대국민 담화라도 발표했어야 마땅한 상황은 여러 번 있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일본 방문 직후였다. 한일 관계 복원과 미래지향적 외교를 택한 윤 대통령의 결단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국내 여론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윤 대통령 귀국 후,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어야 한다. 일본에 대한 국민 정서를 이해하지만 국가지도자로서 고민을 진솔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성과를 보고하고, 국민의 승인을 얻는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식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장문의 소감을 밝히는 것으로 이를 대신했다. 일방통행이라면 차라리 대국민 담화가 나았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순방 후 으레 기자회견을 열거나 정당 지도자, 5부 요인, 7대 종단 지도자 등을 초
인천시 미추홀구.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양아들 비류가 정착한 도읍이었다. 이 유서 깊은 삶의 터전이 최근 비극의 현장이 됐다. 이곳의 전세사기 피해로 거리에 나앉을 판인 청년 셋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달 17일 숨진 채 발견된 육상(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박모씨(31·여)도 그중 한 명이었다. 4㎏짜리 해머에 자신의 꿈을 실어 던지던 그였다. 하지만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 2700채를 보유한 '건축왕' 남모씨 일당을 만나면서 비극의 싹은 텄다. 이 일당의 아파트가 지난해 3월 경매에 넘어가면서다. 힘겹게 모은 전셋값 9000만원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그의 미래도 무너져 내린 격이다 이 '맨발의 청춘'의 비극을 개인적 불운으로 돌리긴 어렵다. 유사한 전세사기가 전국화할 낌새여서다. 허점투성이 주택제도가 미추홀 건축왕, 수원의 '빌라왕' 같은 괴물을 곳곳에서 만들어내고 집 없는 서민층을 울리고 있으니…. 이는 역대 정부의 허술한 주택정책이 누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 당시 여권이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이 결정적 뇌관이었다는 사실이다. 문 정부는 징벌적 세금으로 '미친 집값'을 잡으려 했으나, 전월세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불거졌다. 그러자 2020년 8월 더불어민주당이 빼든 카드가 임대기간을 "2+2"로 늘리고 전세 인상률을 5% 내로 제한하는 임대차 3법이었다. 독일 월세시장에서 힌트를 구한 입법이었다. 그러나 금리와 연동되는, 우리만의 전세시장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법안 통과 뒤 전세가는 치솟고 갭투자의 온상인 전세대출도 급증했다. 그때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부작용을 경고했었다.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연설을 통해서다. 하지만 거대여당 민주당은 귀를 닫고 임대차 3법을 밀어붙였다. 이후 소형 아파트와 빌라 전셋값은 급등하고, 부동산 업자들은 자기 돈 없이 보증금만으로 이를 수백 채씩 사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며칠 전 "과거 정부 반시장 정책이 전세사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 수사력은 최강이었다. 여론용이었을지언정 국민은 시원했다. 급조된 '특별수사본부' '합동수사본부'가 수사력을 총동원, 폭력이든 뇌물이든 짧은 기간에 때려잡았다. '범죄와의 전쟁'은 실제 전쟁을 하듯 조폭 졸개까지 소탕했고 마약전담수사부는 마약쟁이들을 싹쓸이해 청정국 소리를 듣게 됐다. 민주화의 진전은 범죄 대응에서는 후퇴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기강 확립이 민주화에 역행한다고 오판한 탓이다. 간첩은 조직 속에 파고들어 공공연히 날뛰었고, 부정과 비리도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쳤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권력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파묻혔다. 불법시위를 보고도 경찰은 멀뚱거리기만 했다. 흉악범을 잡아야 할 경찰이 되레 같은 경찰에게 112 신고를 한 적도 있다. '검찰의 칼' 대검 중앙수사부는 '권력의 시녀'라는 조롱 속에 종언을 고했다. '검수완박'은 검찰 무력화를 완결시켰다. 비대 권력의 다이어트란 미명 아래 검찰은 손발이 묶였다. '살아 있는 권력'을 잡으란 임무를 넘겨받은 공수처는 눈치만 보며 '시녀'의 옷을 벗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거악은 음모를 꾸밀 텐데 무슨 수사를 하고 있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숨어 있던 범죄자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발호하기 시작했다. 허울 좋은 '전쟁 선언'이 이어지지만 나약해진 수사력은 기를 못 쓴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한 게 작년 10월이다. 반년이 지났어도 마약꾼들은 콧방귀를 뀐다. 잃어버린 지갑을 4시간 만에 찾아주는 경이로운 한국에 외국 관광객들은 감격한다. 택배 물건을 쌓아두어도 훔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택시강도나 아리랑치기, 빈집털이범, 소매치기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의 치안이 최고라고 생각할 만하다. 과연 그런가. 한국에서 범죄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외국인들은 한쪽만 본 것이다. 도둑과 강도들은 이득도 적고 CCTV에 찍히는 '위험한' 범죄에서 떠났다. 컴퓨터를 배워 디지털
코로나가 발병하기 얼마 전 독일 베를린에 갔다가 즐거운 경험을 했다. 독일식 케밥을 맛보려고 유명 맛집 앞에 2시간 가까이 줄을 섰다. 튀르키예인이 운영하는 노점이었다.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빵에 고기를 넣어 먹는 '되네르(회전) 케밥'의 원조가 베를린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케밥이 베를리너의 솔푸드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1960년대 튀르키예인 노동이주자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독일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싸고 푸짐한 데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여니 그럴 만했다. 이민자의 음식이 빛을 발한 사례이다. 재미를 본 독일 정부는 최근 '독일에서 성공하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문턱을 낮추고, 이중국적을 허용하며, 시민권 취득조건을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이민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에선 다민족·다문화가 정착된 지 오래다. 두 '늙은 제국'엔 요즘 활기가 넘친다. 일본은 3년 전, 대만은 15년 전부터 이민 전담부처를 운영 중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걸음마 단계다. 출입국·난민은 법무부, 다문화가정은 여성가족부, 재외동포는 외교부, 외국인 근로자는 고용노동부, 외국인 주민은 행정안전부 등 여러 부처에 업무가 흩어져 있어서 효율적인 정책 수립과 추진이 어렵다. 120년에 걸친 한인 이민사를 통해 730만명의 재외동포가 180개국에 산다. 한국은 인구 대비 재외국민 규모가 가장 많은 나라이지만, 이민자는 인구의 5% 남짓이다. 이민자 220만명 중 조선족 동포가 84만명쯤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역대 정부의 저출산대책은 백약이 무효로 결론이 났다. 세계 최저·최악의 출산기록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호들갑 떨고 싶진 않지만 대한민국은 소멸 직전이다. 세계적인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그 대가로 이를 물려줄 다음 세대가 없어졌다"면서 "한국은 2750년에 국가소멸 위험에 처할
"지금 우리는 옳지 않은 경제적 비관주의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20세기 경제학의 거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을 쓴 때가 1930년이다. 케인스는 살벌했던 대공황 한복판에서 현실을 넘어 100년 후 미래를 봤다. 2030년쯤엔 생활 수준이 여덟 배로 높아질 것이며 생존보다는 잘사는 것에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생산성은 급격히 좋아져 주당 근로는 15시간으로 족할 것이라는 게 케인스가 본 미래다. 세계가 멸망할 것 같던 시기 눈이 휘둥그레질 대담한 예측이었다. 전망은 기막히게 들어맞은 것도 있고 완벽히 빗나간 것도 있다. 케인스 후예를 자처한 세계 경제석학 10명은 케인스를 돌아보며 미래보고서 '새로운 부의 시대(2013년)'를 펴냈다. 이들은 케인스의 놀라운 안목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주 15시간은 거의 공상과학에 가깝다"는 평을 했다. 그렇다면 다시 앞으로 100년 후면 근로시간이 확 줄어들까. 석학들은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주목한 것은 부의 팽창과 커지는 노동의 대가다. 사람들의 욕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강력한 인센티브가 일의 양을 줄이지 못하게 한다고 본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회의적인 시각은 어찌 보면 미국적이다. 미국에서 풀타임 근로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세기 전반기 계속 줄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하향세는 뚜렷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진다. 유럽의 경우 주 40시간 체제가 미국보다 늦었지만 지금은 미국보다 연간 300시간가량 근로가 적다. 로버트 솔로 미국 MIT 명예교수는 미국인들의 출세지향적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인, 일본인도 같은 범주에 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정 정규근로시간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국 대부분이 주당 40시간으로 비슷하다. 연장근로의 경우 미국에선 상한선이 없다. 노사가 알아서 정하는 게 룰이다. 영국, 호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일본은 연간 360시간 이내로 허용한다. 사업장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