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국가원수들 단골호텔

파이낸셜뉴스       2004.03.10 10:53   수정 : 2014.11.07 20:17기사원문



호텔에 관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는 한국 사람들도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은 안다.

박정희 대통령을 위시한 역대 한국 국가원수가 미국방문 때 체재한 호텔, 뉴욕에서 한국과 관련한 국제회담이나 협상이 열리면 대표단이 묵는 호텔로 국내 매스컴에 항상 등장하는 데다가 뉴욕과 유엔을 방문하는 국가원수 대부분이 이 호텔에 투숙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열리는 공식만찬이나 중대발표가 하도 많다 보니 “지난 X일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린…”이라는 문구는 월드뉴스에서 하나의 상용구가 되어 버렸다. 1931년, 지금의 자리에 개관한 이래 한 세기가 가까워 오도록 아무도 넘볼 수 없는 VIP호텔로서의 위상을 굳게 지키고 있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이 호텔은 원래 지금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자리에 있었다.

독일 이민의 후손으로 뉴욕의 부호이며 호텔 창업주였던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William Waldorf Astor)는 빌딩 건설을 위해 부지를 양도한 뒤 지금의 자리에 당시로서는 초고층이었던 42층의 ‘The Waldorf Tower’를 건설해 호텔을 이전했다.

맨하탄의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이 호텔은 세계최대의 2200여 객실 규모에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호텔이었다. 정통 아르데코 양식의 라임스톤 건물은 지금도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1931년 10월 1일,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이 새로 개관하던 날, 뉴욕과 미국은 오랜만에 축제 분위기였다. 수천 명의 고객이 호텔을 메웠고 초대형의 호화스런 연회장은 잘 차려 입은 귀부인들로 넘쳐났다. 후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축하메시지를 방송하였고 이를 듣기 위해 2만 명의 군중이 호텔 주변에 운집하였다.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같은 이는 그 호사스러움을 “월도프-아스토리아을 위한 광고”(Advertisement for the Waldorf-Astoria)라는 시로 비웃었지만 경제공황기의 당시 미국 사회에서 월도프-아스토리아의 건설과 개관은 커다란 활력소였다.

이후 경제부흥과 세계대전, UN창설 등 격변하는 세계사의 중심이 된 뉴욕에서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은 그 무대가 되는 것이다.

파크 애비뉴(Park Avenue)와 렉싱턴 애비뉴(Lexington Avenue), 49번가와 50번가로 구획되는 한 블럭 2200여 평 전체가 호텔이다. 명품쇼핑가와 미술관들을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고 센트럴파크도 그리 멀지 않은, 맨하탄 안에서도 가장 중심인 지역이다.

파크애비뉴를 걷다보면 거의 항상 체재 중인 국가원수의 국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내 걸린 호텔 전면이 보인다. 로비로 들어서면 고색창연하기는 하나 상상만큼 위압적이지 않다. 사방에 호텔 입구가 있어 미로 같은 로비에서 두리번거려도 바삐 오가는 사람에게는 관심 밖이다. 프런트데스크 앞의 바닥에는 아르데코풍의 타일모자이크그림이 있다. 루이스 리갈(Louis Rigal)이라는 사람의 ‘휠 오브 라이프’(Wheel of Life)라는 작품인데 그동안 카페트로 덮여 있다가 최근에 보수된 것으로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일작품이라고 한다.

중앙로비(Central Lobby)쪽으로 가면 유명한 시계가 있다. 높이 2.7M, 무게가 2t이나 나가는 대형 주물제 시계로 1893년 런던의 골드스미스(Goldsmith)사가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 출품했던 것이다. 시계 아래에는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 7인과 빅토리아 여왕이 조각되어 있고 시간마다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를 울리는 명물이다.

피코크 앨리(Peacock Alley), 불 앤드 베어(Bull and Bear), 마르코 폴로 클럽(Marco Polo Club) 같은 전설적인 업장이 위치한 메인로비 주변은 항상 외교사절과 뉴요커들로 붐빈다.

호텔은 명성 못지 않게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다. ‘더 월도프-아스토리아’(The Waldorf-Astoria)의 초대 총지배인이었던 죠지 C 볼트에 관련된 일화는 호텔사에서는 신화적인 이야기이다.

어느 날 새벽 1시경 미국 필라델피아의 작은 호텔에 노부부가 찾아와 하룻밤 투숙할 것을 요구한다. 호텔의 접수 담당자는 “지금 이 곳 타운에서는 세 건의 컨벤션이 열려 호텔마다 초만원입니다. 저희 호텔도 만원이지만 지금 시간이 새벽 한시인데다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두 분을 밖으로 나가게 할 수도 없군요. 괜찮으시다면 제 방으로 들어가 쉬시지요” 하며 선뜻 자기가 기거하는 방을 내주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노부부는 지난 밤의 그 친절한 종업원을 찾아 인적사항을 적고 “당신 같은 젊은이는 미국에서 제일가는 호텔의 매니저로 일해야 마땅할 사람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위해 그런 호텔을 하나 지어 드리지요”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그 젊은이는 싱긋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고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채 다시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청년은 2년 전의 그 노부부로부터 초청장과 함께 뉴욕왕복차표가 들어있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뉴욕에 도착한 젊은이를 시가지의 한 곳으로 데리고 간 노인은 거기 새로 지은 한 고층건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건물이 바로 내가 2년 전 당신에게 약속했던 호텔이요. 오늘부터 당신은 이 호텔의 총지배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일에 어리둥절한 젊은이는 2년 전의 일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이렇게 해서 ‘죠지 C 볼트’라는 젊은이는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에 의해 당시 세계 제일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의 초대 총지배인이 되는 것이다.

‘더 월도프-아스토리아’라는 이름은 당초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터에 있던 아스토가(家)의 월도프 호텔과 사촌이었던 캐롤린 슈어메르혼(Caroline Schermerhorn)이 만든 아스토리아호텔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면서 합쳐져 건설된 것에 기인한다.

2003년에는 하이픈대신 동격부호를 써서 공식 명칭이 ‘The Waldorf=Astoria’가 된 것을 보면 내부 사정이 간단치는 않은 듯 하다. 나중에 호텔왕 콘래드 힐튼에게 인수되어 힐튼호텔 체인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지금도 월도프 타워는 힐튼체인, 더 월도프-아스토리아는 콘래드호텔 체인이다.
콘래드 힐튼은 영화배우 자 자 가보(Zsa Zsa Gabor)와 재혼했고 맏아들 콘래드 주니어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첫남편으로 유명한다. 최근에는 힐튼가문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고 있다.“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줄을 몰랐다”고 해서 사람들을 기막히게 했던 이 억만장자 파티걸은 호텔의 30층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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