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률 ‘새벽’ 10호-300만원
파이낸셜뉴스
2006.11.07 16:57
수정 : 2014.11.04 19:42기사원문
※옷깃 여미게 만드는 고요함 매력
※8일부터 인사아트센터 전시
“나는 박항률님의 그림 앞에 서면 늘 침묵과 고요함을 느낀다. 그것은 이 소란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어느 한 순간, 담벼락 모퉁이에 홀로 피어 있는 백일홍을 보고 갑자기 걸음을 딱 멈추었을 때 느껴지는 고요함과 같다. 나는 그의 고요함 앞에 언제나 옷깃을 여민다. 그의 고요함은 고맙게도 내 고단한 현재적 삶을 정지시킨다.”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작품의 매력은 ‘고요함’이다. 전체적으로 신비감이 감도는 그림은 물이 가죽에 스며드는 것처럼 현대인들의 마음을 경건하고 순하게 만든다. 시적인 정서를 그림에 반영, 섬세하고 정교한 감수성과 개성있는 미감은 화단과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달 서울대 동문 60만원전에 출품된 박항률 작품은 10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작품값은 2004년까지 호당(22㎝×16㎝) 25만원에 거래되던 것이 지난해부터 30만원으로 올랐다. 이번전시에 나온 작품 10호는 300만원, 20호 550만원, 50호 1300만원, 80호는 1800만원에 판매한다.
■조용한 침묵속에 숨쉬는 정열
단발머리, 댕기머리 옆모습의 단아한 소녀. 상념에 잠긴 주인공들은 마치 상상의 너울에 빠진 듯하다. 정적인 화폭 안에 스민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군더더기가 없다. 단지 원근이 느껴지지 않는 단색의 미묘한 평면을 배경으로 단독의 인물상이 단정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평론가 박신의씨는 “작품의 인물이 보여주는 정갈한 자태는 스스로에게는 극도의 정지된 시간과 공간을 부여하고, 자신을 둘러싼 배경에는 매우 느리지만 무한한 깊이를 가지고 빠져들어가는 생각의 ‘동선’을 ‘면’으로 그려내고 있다”며 “섬뜩하리만큼 아름다운 내면 세계와의 조우”라고 평한다.
‘시같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90년대부터 시집을 내기 시작해 ‘그리울때 너를 그린다’ 등 시집 3권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시와 그림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원고지 대신 캔버스를, 펜대신 붓과 물감을 사용할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회화적이고 그의 그림은 다분히 시적이다.
세상살이와 왠지 두꺼운 벽을 쌓고 살아가는 듯한 작가. 그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그림이란 바깥세상으로 열려진 창문을 굳게 잠그고 지루하게 가면놀이에 몰두하는 독백의 방이다."
'참으로 세상은 평화로운데 사람의 마음만이 소란하다'는 작가는 번잡한 생각들을 침묵속에 가두고 늘 말이 없다.
■인사아트센터서 24번째 개인전
‘시를 쓰는 화가’ 박항률의 24번째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8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여인들의 모습을 신화적 상상의 상징물로 변화시킨 새, 꽃, 나비 등 자연의 이미지들을 화면 속에 담은 신작 60여점을 선보인다.
독특하고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120호를 비롯하여 꿈을 꾸듯 맑고 투명한 눈빛의 신비로운 얼굴만을 담아낸 3호의 소품까지 다양하다. 드로잉과 창살오브제 등 다양한 기법으로 시도된 작품들도 출품됐다.
최근작에는 과거에 등장했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나온 듯한 전통적인 상징물(소녀의 머리위에 앉아 있는 날개 달린 물고기, 등에 소년을 태우고 달리는 천마 등)이 많이 사라졌거나 자연적인 배경으로 변화됐다.
‘머리에 새가 앉아 있는 소녀’, ‘나뭇가지 끝에 홀로 앉아 있는 잠자리’, ‘꽃을 들고 있는 한복 입은 댕기머리 소녀’, ‘저 먼 곳 어딘가를 응시하는 맑은 눈빛의 여인’ 등의 명상적 그림들은 고단한 우리들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비로운 소녀들의 투명한 모습은 ‘오렌지주스로는 해갈될 수 없는 갈증을 한잔의 생수로 풀어주듯 찌든 영혼의 갈증’을 풀어준다. 현실의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전시는 21일까지. (02)736-1020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사진설명=새벽 The Dawn, 캔버스위에 아크릴·53×45.5㎝·2006(왼쪽작품)
서양화가 박항률은 1950년 경북출생으로 서울대 미대 회화과·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80년대 후반부터 개념미술적 성향의 추상화 작업을 하다가 40대 초반인 90년대부터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그림으로 바뀌어 지금의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비공간의 삶' '그리울 때 너를 그린다' 등 시집 세 권을 펴냈다. 현재 세종대학 예체능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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