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학·비움의 정신…리움 ‘한국미술-여백의 발견’ 전
파이낸셜뉴스
2007.11.05 14:01
수정 : 2014.11.04 20:22기사원문
화려하고 현란한 현대미술의 가벼움에 들떴다면 깊어 가는 가을, 은근하면서도 깊이 있는 한국미술의 정수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고려청자, 조선백자, 민화, 근현대 미술, 동양화 같은 사진 등 삶의 긴장감을 풀어 눅이는 마음의 고요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3주년을 맞아 고미술과 현대미술 명품을 모아 기획한 ‘한국미술-여백의 발견’전이다.
리움의 상설 전시장이나 수장고에 들어있던 고미술 명품들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것. 신라시대 토기부터 현대미술 대표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부터 개인 소장 미술품까지 고미술 28점, 현대미술 33점 등 총 61점이 소개된다.
현대미술 작품들은 고미술작품들과 세트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됐다.
첫번째 주제인 ‘자연’의 코너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맞은편에 현대미술작가 황인기가 버려진 합판 위에 인조 크리스털을 픽셀 삼아 인왕제색도를 재현한 ‘방(倣)인왕제색도’가 걸려있다. 동양화 같은 이기봉, 배병우, 권부문 등 사진작가의 풍경사진을 따라가면 장욱진의 ‘강변풍경’, 박수근의 ‘귀가’와 이어지고 김수자의 영상 ‘빨래하는 여자-인도 야무나 강가에서’도 같은 방에 전시,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는 삶, 자연과 조화를 이룬 세상을 보여준다.
두번째 코너 ‘자유, 비움 그러나 채움’에는 조선시대 ‘백자달항아리’(보물 10424호)와 달항아리를 유난히 사랑했던 화가 김환기가 그린 뉴욕시대 푸른 점그림 ‘하늘과 땅’이 한방에 들어앉아 있다. 또 수묵으로 그려낸 서세옥의 군부 구리실선으로 빚어낸 정광호의 당항아리가 텅빈 듯 꽉 차게 놓여져 있다. 비우고 채워지는 자유, 고요 속으로 스미고 배어드는 여유를 선사한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중견·원로 현대화가들의 작품이 이곳에서 더욱 빛이 난다. 정상화의 단색조 회화, 서세옥, 이우환, 이종상, 이강소가 넓은 바탕 위에 획 몇 개만 강조해 그린 그림들은 추상 회화의 맛을 제대로 뽐낸다.
세번째 코너 ‘상상의 통로’에 들어서면 18세기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이 발길을 잡아당긴다. 극사실화의 원조격이다. 몸체는 없이 얼굴만 담아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극적인 효과가 일품인 이 작품은 표정은 물론 수염터럭까지 진짜 붙어 있는 듯 생생하다. 우리나라 최고 걸작 초상화로 불린다. 또 한국 조각계의 큰 어른인 김종영의 1958년 작품, 백남준의 명상적인 작품 ‘TV 부처’도 만날 수 있다.
전시 공간도 ‘빈자의 미학’ ‘비움의 미학’으로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이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를 연상하면서 꾸몄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조화, 꽉 찬 듯한 ‘텅 빈 충만’을 선사한다. 전시는 내년 1월27일까지.
기획전 일반요금 7000원. 상설전과 기획전을 함께 볼 수 있는 데이패스는 1만3000원. (02)2014-6901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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