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배우들의 좋은 연기 신파 막아

파이낸셜뉴스       2007.11.08 21:01   수정 : 2014.11.04 20:06기사원문



시인 정호승은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읊었다. 사랑한 게 왜 미안한 걸까. ‘샤인’을 보면 깨달음이 온다. 성탄이의 아빠 영종은 열아홉살 어린 아내 혜연에게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라고 고백한다. 영종이 그렇게 말할 때 객석에 있던 나도 같은 남자로서 혜연에게 좀 미안했다.

‘샤인’은 실화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5년 전 TV 다큐멘터리로 방영됐던 ‘성탄이의 열두번째 크리스마스’가 바탕이 됐다. 평생 전과자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사는 영종과 운명적으로 ‘아저씨’를 사랑하게 된 혜연, 둘 사이에 태어난 성탄이 세 식구가 주인공이다. 여기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멀티맨까지 있으니 출연자는 모두 넷이다.

영종은 나이트클럽에서 기타를 치다가 조폭으로 진로를 바꾼 건달 출신이지만 출소 후 혜연을 만난 뒤 180도 다른 삶을 찾는다. 혜연은 펄펄 뛰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저씨’와 살림을 차린다. 아들 성탄은 이미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성탄은 가족을 위해 엿장수 각설이를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 출산 후유증으로 정신이 나가 “배 고파. 밥 먹자”는 말밖에 못 하는 엄마와 함께 가난하지만 비교적 오붓하게 살아간다.

자칫 신파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오붓함 속에 갈등도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열일곱살 성탄이가 사방 꽉 막힌 현실에 분노하며 아버지한테 대들 때 혜연이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타이른다. “성탄아, 그러면 안 돼.” 이어지는 엄마의 노래는 눈물샘을 사정없이 자극한다. 혜연 역의 양꽃님은 노래를 아는 배우다. 소리가 작을 때와 클 때, 높을 때와 낮을 때를 구분할 줄 안다. 마구 불러 제끼는 가수가 아니란 뜻이다. 어두운 조명 속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명암이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볼만했다. 엄마의 노래를 들을 때 성탄(박인규)은 진짜 울먹이고 있었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신파를 막았다.

익살도 한몫 했다. ‘쓰릴미’에서 성가를 올린 최재웅은 날카로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조폭 두목부터 경찰, 혜연의 아버지까지 여러 역할을 잘 소화했다. ‘김종욱 찾기’에서 화제가 된 멀티맨 활용은 어느덧 연출가 김달중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넘버들도 들을 만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릴만한 노래가 없다는 게 늘 창작 뮤지컬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번에도 “아, 이거다” 할 정도의 넘버는 없었지만 대체적으로 귀에 거슬리지 않은 데다 일단 노래가 풍부해서 좋았다. 영종이 다른 조폭에게 폭행당할 때, 성탄이가 드럼을 부술듯 내려칠 때 사이키 조명을 활용한 극적인 긴장감 조성 시도도 잘 먹혀들었다.

소극장 뮤지컬의 또 다른 스테디셀러 탄생을 기대해 본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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