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그리고 도편추방제/노종섭 생활경제팀장

파이낸셜뉴스       2007.12.10 16:52   수정 : 2014.11.04 15:31기사원문

선거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민주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지도자를 뽑지만 당시 선거는 위험 인물을 추방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고대 그리스 민주정 시대에는 시민들의 비밀 투표를 통해 위험 인물을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도편추방제가 있었다.

시민들은 독재정치를 막기 위해 위험 인물의 이름을 조개껍데기에 기입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했다. 총 투표자 수가 6000명을 넘으면 추방이 결정됐다고 한다.

평민 지도자이며 장군이었던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가 되었을 때 클레이스테네스가 만들어 BC 487년에 처음으로 실시됐으며 페르시아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던 장군 아리스테이데스, 테미스토클레스, 키몬 등이 그 희생양이 되었다.

대통령 선거일이 1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 도편추방제로 회귀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나 정책 대결은 없고 오직 상대후보 흠집 내기만 난무한다. 상대후보는 위험인물이니 뽑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뿐이다. 국외로 추방하지 않을 뿐이지 위험인물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도편추방제와 같은 맥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장 후보가 각각 지난 14대,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다시 복귀했지만)한 예에서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지도자를 뽑는 지금의 선거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시대적 상황이 변하고 유권자들의 의식이 진화됐는데도 정치인들은 2500여년 전 도편추방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선거일을 1주일여 앞두고 있지만 ‘BBK 관련 거짓말을 일삼은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 ‘근거 없는 정치 공세를 펴는 후보는 대통령 선거에 나설 자격이 없다’ 등 상대방에 대한 공격 일변도다.

선거 돌입 전부터 BBK 공방을 벌이던 각 후보들의 정쟁은 이번 선거 내내 시종일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할 능력 있는 차기 지도자를 선택하기보다는 누가 얼마나 많은 흠집을 갖고 있는가 하는 네거티브 게임이다. 국가 대계에 대한 희망적인 공약보다는 ‘공세’ ‘반격’ ‘부정부패’ 등 네거티브 용어만 난무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권자들도 ‘누가 덜 부정부패한가’ ‘누가 그나마 나은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데 익숙하다. 국민도 네거티브 선거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등 후보자, 정치인들에 동화된 모양새다.

유권자간의 대화에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 기대된다’는 식의 기대는 없다. 오히려 ‘○○○후보는 ○○○때문에 안 된다’식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기업들의 영향력이 더 커질텐데… 대기업의 횡포가 더 심화되지 않을 까 걱정이다.”(중소기업체 직원) “이회창 후보가 개성공단에 대못 박는다고 했잖아. 대통령이 되면 대못까지 박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대북 사업에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개성공단 입주업체 직원), “정동영 후보가 되면 영어교육을 없애고 대학입시를 폐지한대,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가야 되는 것 아냐”(학부모). 대충 이런 식이다.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선택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기대보다는 ‘○○○ 되면 ○○○가 안 좋은데…’ 등 부정적인 것들을 더 우려하는 공통점이 있다.

오죽했으면 찍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반응도 투표율을 끌어 올리려는 선거관리위원회에는 반가운 모습이지만 달갑지만은 않다.

도편추방제는 당시 민주대개혁의 하나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이후 유력한 정치가를 몰아내기위한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등 부작용이 심화되면서 BC 417년 사라졌다.

당시는 민주주의의 시금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도편추방제도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변질되면서 빛을 발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로 잘못 이용되면 독이 되는 셈이다.

네거티브 선거가 계속된다면 그나마 차선이라도 선택했던 국민들이 결국은 발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의 무용론까지 나오질 말란 법도 없다. 선거일이 1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남은 기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거운동을 기대한다.

/njsub@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