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노벨상’ 카블리상 뜬다

파이낸셜뉴스       2008.07.10 16:37   수정 : 2014.11.07 00:05기사원문



지난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과 말뫼,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오가며 제10회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가 열렸다. 과학 대중화와 관련된 세계 전문가들이 2년마다 한자리에 모이는 이 콘퍼런스는 2006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됐다.

올해는 빛의 속도를 자전거 속도 정도로 늦추는 연구로 유명한 하버드대 르네 베스터가드 하우 교수, 위키피디아를 함께 만든 래리 생어, 80세의 억만장자 프레드 카블리 등이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노벨상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노르웨이 출신의 사업가 겸 자선활동가 프레드 카블리의 독특한 삶과 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카블리상’(Kavli Prize)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전 세계 과학자에게 알렸다. 노벨상처럼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이 상은 지난 5월 첫 수상자를 발표했고, 제2의 노벨상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2의 노벨, 카블리

노르웨이 공과대학을 졸업한 프레드 카블리는 미국에 건너가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다. 그는 2년 만에 카블리코사(Kavlico Corporation)를 세우고 센서를 판매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2000년 회사를 매각한 그는 캘리포니아에 재단을 설립, 과학기술 연구 후원에 매진하기로 결정했다.

카블리는 이런 결심의 일환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자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카블리재단은 15개 연구소를 대학에 세워 운영하고 있으며 석좌교수 형태로 연구자를 직접 후원하기도 하다. 그러던 그가 노르웨이 정부, 과학한림원과 함께 야심차게 첫발을 내디딘 것이 ‘카블리상’이다.

■노벨상을 뛰어넘을까

아무래도 노벨상을 의식했을 ‘카블리상’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별화를 꾀한다.

먼저 과학의 혁신의 눈부신 속도에 발 맞추겠다는 것. 한 인터뷰에서 카블리는 “노벨상은 너무 느리다”고까지 말한 적이 있다. 일례로 1933년 전자현미경을 설계한 언스트 루스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다 1986년에야 노벨상을 받았다.

두 번째는 현대 과학의 양상에 걸맞게 융합과학 형태로 분야를 정했다는 것이다. ‘카블리상’의 시상 분야는 천체물리학, 나노과학, 신경과학이다.

노벨상과 달리 2년마다 시상되는 ‘카블리상’은 상장·메달과 함께 상금 100만달러가 주어진다. 상금의 규모가 아니라 ‘당대의 과학연구와 얼마나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가’로 경쟁하고 싶다는 것이 프레드 카블리의 생각이다

■첫 수상자 선정

올해 천체물리학 분야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마틴 슈미트 박사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도널드 린덴-벨 박사가 퀘이사에 대한 연구로 수상했다.

나노과학 분야에서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루이스 브루스 박사와 일본 메이조대학의 이지마 수미오 박사가 수상했다.

강철보다 더 강력한 탄소 나노튜브와 중공원통연구의 개척자인 이지마 수미오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균나노과학연구원장으로 재임하고 있기도 하다.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스텐 그릴러 박사, 컬럼비아대학의 토머스 제셀 박사 그리고 예일대학의 파스코 라킥 박사가 공동으로 선정됐다.


몇몇 언론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자존심 대결로 바라보는 촌극을 빚기도 했지만 노르웨이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고 확고해 보인다. 천연자원에 의존하던 미래에 과학기술과 창의적 인재가 중심이 되는 국가로 국제사회에 자리매김하고 싶은 것이다.‘카블리상’의 시상식은 오는 9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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