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파이낸셜뉴스       2008.08.17 20:49   수정 : 2014.11.06 05:51기사원문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무엇일까. 소설가 이외수는 ‘사람을 보관하는 콘크리트 캐비닛’라고도 말한다. ‘아파트는 집’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부의 척도’이자 중산층으로 편입되는 ‘통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파트 한 채, 열 아들 안 부럽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아파트가 국민을 울리고 웃긴다.‘부동산 불패’의 신화이고 ‘투기 광풍’의 주범이다. ‘돈 넣고 돈 먹는’ 머니게임장인 아파트는 정부와 매년 ‘전쟁’을 벌인다. ‘승자’는 아파트다. 서울 강남을 누르면 강북 아파트가 들썩이고 강북을 누르면 수도권으로 번지는 ‘풍선효과’를 내면서 가격이 계속 뛴다. 재래식 화장실·부엌, 연탄의 불편함을 몰아낸 아파트는 깨끗하고 편리함을 강점으로 대다수 국민의 주거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대다수 인구가 아파트에 살기를 열망하는 ‘코리안드림’. 그러나 ‘아파트라는 이름의 욕망’은 ‘빚진 서민의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파트는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의 상징물인 아파트는 최첨단 시스템과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유행상품이 됐다. 그렇다면 아파트는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을 사로잡았을까.

■1960년대, “마실 물도 귀한데 수세식 화장실이 웬말”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시대가 개막한 것은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현재 마포 삼성아파트 자리)다. 4만3000㎡(1만3000평)의 대지에 총 10개동 564가구를 집합시킨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29㎡와 39㎡, 49㎡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려 했으나 당시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마실 물도 귀한 판에 수세식 화장실은 무슨…’이란 여론에 밀려 설치하지 못했다. 결국 연탄난방에 승강기가 없는 6층의 소형 아파트로 건립됐다. 당시에는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인기가 없었다. 이후 1968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외국인 전용 힐탑아파트, 용산구 동부이촌동 공무원 아파트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1970년대 서울 강남 등의 아파트개발 붐이 일면서 돈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아파트 본격 등장…투자 ‘열풍’

1971년 주공이 부유층을 겨냥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완공한 3028가구의 반포주공아파트는 부동산 투기의 ‘원조’ 격이다. 가장 작은 게 72.72㎡였고 국내 최초의 복층(211㎡)도 들어섰다. 이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자 청약장에는 엄청난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부동산 시장에 ‘복부인’이란 말도 이때 생겼다. 정부는 3년 뒤인 1974년 아파트 분양추첨제를 도입했다. 이후 1975년 1만5000가구 송파구 잠실동 일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강남 개발 열풍이 이어졌다. 1976년부터는 현대건설, 경남기업, 대림산업 등 민간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면서 아파트 대중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1977년 삼익주택이 여의도에 지은 목화아파트는 45대 1, 화랑아파트는 7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0년대 말에 정부는 주택 500만가구 건설계획과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 아파트 투기 광풍을 몰고 왔다. 이때부터 올림픽 시설물 건설 바람을 타고 교통망이 확충된 강남구와 송파구 일대 아파트는 투기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강남 불패 버블세븐’의 원조다.

■아파트의 고층화·유비쿼터스 구현

1993년 한국을 방문,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놀라 한국사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아파트공화국’의 저자 발레리 줄레조 교수는 당시 반포지역 아파트 단지를 프랑스 동료 도시계획가에게 보여주자 “한강변 군사기지는 규모가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순간은 웃고 넘기지만 결코 그냥 흘려버릴 수만은 없게 한다.

하지만 ‘군사기지 같았던 아파트’는 1990년대 후반 들어 진화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데다 분양가자율화가 단행되면서 물량 위주 공급에서 주거의 질을 높인 ‘브랜드 아파트’ ‘웰빙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선 상업용지에 주상복합아파트 건립이 허용되면서 아파트는 고층화·고급화하고 있다. 최근 아파트는 정보기술(IT)과 결합돼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뜻의 유비쿼터스가 결합되면서 아파트도 이젠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닌 ‘과학’과 ‘예술’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내부는 호텔,외부는 공원

성냥갑 모양의 판박이 아파트가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는 더 편리한 삶을 위한 디자인의 혁신에 최첨단 기술의 경연장, 호텔 같은 인테리어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소비자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고급 마감재와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유비쿼터스, 홈네트워킹, 친환경 커뮤니티공간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는 '신평면 개발'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부산에서 분양된 '해운대 아이파크'는 직선 평면구조의 고정관념을 깼다. 삼각구조 등 곡선형 평면만으로 이뤄진 이 아파트는 또 벽을 움직일 수 있게 해 공간활용도를 높였다.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도 '쿡인 쿡아웃 키친'이라는 이름의 신평면을 개발,조리공간을 보이지 않도록 배치하고 식탁이 있는 차림공간은 전면에 배치, 깨끗한 실내공간을 선보였다.

획일적이고 단조롭던 외부 형태도 많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웰빙붐이 일면서 환경친화적이고 자연생태적인 '공원 같은 아파트'가 나타났다. 아파트 외부공간이 변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주차장의 지하화다. 당시 동일토건은 지상주차장을 100% 공원으로 만들어 대박을 터뜨렸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는 이제 옛말이다. 브랜드나 기술 수준의 격차가 점차 줄면서 이제 건설업체 사이에선 건물 디자인이 '승부의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 롯데건설은 '캐슬게이트'로 단지 출입구부터 유럽의 개선문 같은 웅장한 모습으로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현대산업개발과 두산건설은 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참여시켜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에 각각 80층과 72층 높이의 '명품 아파트'를 짓고 있다.

에너지절약형 아파트도 등장했다.대림산업의 e-편한세상은 국내 최초로 2003년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국내 최초의 에너지절약 1등급 인증 아파트로 선보였고 2006년에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초에너지절약 공동주택 시범단지를 준공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은 건설사들의 최첨단 시스템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집안의 빌트인시스템은 기본이고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유비쿼터스 아파트도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공동개발한 'U폰'을 이용하면 거실에서 양방향TV를 작동하거나 조명을 조절할 수 있다.
집이 사람을 자동 인지해 실내환기시스템을 작동시키거나 지능형 욕조를 통해 원하는 수온 및 색깔의 물로 맞출 수 있다. 초고층의 화재·지진·강풍으로부터 안전을 위한 최첨단 공법도 도입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 미래 아파트는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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