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그 달콤 쌉싸름한 유혹

파이낸셜뉴스       2009.06.04 17:20   수정 : 2009.06.04 17:20기사원문

▲ 1969년 7월 1일 국내에서 신용카드로 첫선을 보인 신세계백화점카드(가운데)와 신세계백화점이 40년 동안 발급한 신용카드들.
나는 신용카드입니다.

1949년 처음 세상에 나왔는데 미국의 시카고가 고향입니다. 사업가인 ‘프랭크 맥나마라’가 나를 처음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200명만이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69년 처음 들어왔고 그때에는 플라스틱 판으로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은 저를 ‘엠보싱 카드’라고 불렀습니다.

실제 이름은 ‘신세계백화점 카드’였으며 이 카드는 신세계백화점과 관련된 일부 사람이 신세계백화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백화점 카드는 소수의 고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신세계백화점 카드를 갖고 있으면 선택받은 사람으로 여겨지던 때로 저를 갖고 있는 것은 곧 특권층을 의미한 것이었어요.

벌써 제가 국내에 등장한 지 올해로 40년이 됐네요. 사람들은 저를 무척 좋아합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저를 5∼6개 정도 갖고 있죠. 요즘에는 초등학생도 저를 지갑에 넣고 다닙니다.

하지만 저도 고난의 세월이 있었죠.

지난 2002년 사람들이 말 그대로 저를 물 쓰듯이 쓰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진 것 기억하시죠. 제 이름 뒤에 ‘대란’이라는 단어가 붙은 안 좋은 추억말입니다.

사람들이 그 때 저를 돌려 막는 바람에 저 역시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 때문에 가정파탄이 나기도 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때로 기억됩니다.

지금도 저 멀리 미국 땅에서 카드발 위기설이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한때는 과소비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죠. 잘 쓰면 유익한데 흥청망청 쓰는 사람 때문에 궁지에 몰려 정말 억울했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하죠. 한 번 시련을 겪은 저도 이런 전철을 밟았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40년이 지난 동안 친구들이 수백명으로 불어났어요. 성격도 제각각이에요.

항공마일리지 적립, 쇼핑마일리지 적립, 레스토랑 할인, 영화관 할인,놀이공원 할인 등등 없는 게 없어요.

제 친구들을 잘 이용하면 용돈을 많이 줄일 수 있어요.

카드로 불우이웃을 도울 수도 있어요. 카드를 쓸 때 쌓이는 포인트의 일정 비율을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공익단체에 기부하는 카드인데 요즘 인기가 많아요.

이쯤되면 저 괜찮은 놈이죠. 저 좀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렇다고 너무 많이 쓰지는 말고요.

■‘지갑속 필수품’ 신용카드 변천사

국내 신용카드 시장은 경제 상황에 따라 울고 웃었다.

근대화가 한창인 1969년 7월 1일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신용카드시장은 명맥만 유지하다 80년대 후반 이후 경재발전 시기와 맞물려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국가 경제가 탄탄대로를 달릴 때는 카드 시장도 성장세를 구가했지만 경제위기 때는 카드 시장도 위기를 맞았다.

현금 선호사상이 워낙 강해 1969년 도입 당시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신용카드는 40년이 지난 현재 웬만한 사람이면 4∼6개 정도는 갖고 다니는 필수품이 됐다. 신용카드 그 40년의 발자취를 더듬어본다.

■신용카드 최초 도입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는 신세계백화점 카드다.

당시만 해도 현금 선호사상이 워낙 강한 때라 신세계백화점의 카드 발급을 놓고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었다. 그러나 신세계백화점은 유통업계의 발전과 신용사회 구축을 위해 신용카드 제도를 과감히 도입했다.

최초의 카드는 플라스틱 신용카드로 플라스틱판 표면에 회원의 이름과 회원번호 등의 정보를 양각시킨 형태였다.

당시에도 고객들은 백화점측의 권유로 카드를 발급받았다. 다만 지금과 달리 선택받은 사람들만 카드 발급이 가능했다. 카드 소지 자체가 특권층을 의미했다고 한다.

40년 전 신세계 백화점 카드를 발급받은 C씨는 “그 시절에 갖고 싶어도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래된 것이라 좀 촌스럽긴 하지만 자금도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서울대학병원 임상병리과에 근무했으며 남편은 임상병리학과 교수였다.

이후 1978년 외환은행이 일반 해외 여행자 등을 대상으로 해외사용 목적의 VISA카드를 발행했고 1980년 국민은행, 1982년 조흥·상업·제일·한일·서을신탁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이 ㈜비씨카드를 설립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다이너스클럽이 각각 1980년과 1984년 국내에 진입했다. 이 시기는 신용카드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가맹점 및 회원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었던 시기다.

■본격적인 신용카드 시대 도래

1987년 신용카드법 제정으로 신용카드 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LG카드, 삼성카드, 동양카드 등 대기업 계열의 전문계 카드사가 출현했고 은행에서 카드영업 부문을 분리해 국민카드, 외환카드 등 은행계 카드사가 설립됐다.

1990년대 초반 신용카드 업계는 처음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3저 호황이 마감되고 다시 고성장을 이어가던 시기로 정부가 물가안정 기조 유지를 위해 불요불급한 소비억제 정책을 펴면서 신용카드 사용률이 감소하는 등 불똥이 신용카드 업계로 번졌다.

그러나 신용카드사들이 전업 자회사를 통해 회원과 가맹점 확보에 나서면서 1992∼96년 신용카드 시장 규모는 급속도로 팽창했다.

이후 1997년 12월부터 시작된 IMF 경제위기로 국민경제 전반의 위기감이 확산됨에 따라 신용카드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의 기반으로 1999년 이후 신용카드 시장은 다시금 고도 성장 시기를 맞이한다.

■카드대란으로 시장 기능 마비

2002년 신용카드 시장은 패닉 상태였다. 시장 규모는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나 금융채무 불이행자 수 급증, 연체율 상승 등으로 신용카드사의 잠재 부실이 현실화됐다. 부실이 커지면서 신용카드사의 자금 조달 기능은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카드사의 부실은 계열사 부실로 이어지면서 국가경제의 위기를 초래했다. 당시 돌려 막기가 성행했으며 이를 버티지 못한 가정이 파탄을 맞거나 카드빚 때문에 자살이 이어지는 등 사회문제로 확대됐다.

결국 정부가 나서 신용카드사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전제로 유통성을 지원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합리적 소비로 시장 성숙기 접어들어

한 차례 위기를 맞았던 신용카드 시장은 2005년 이후 소폭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전업계 카드사와 은행들이 신용카드 사업을 강화하고 있어 시장 경쟁 양상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신용카드 시장은 양적 팽창보다는 서비스의 질적 경쟁 양상이 심화되는 성숙기 산업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카드의 용도가 결제 수단에서 마일리지 적립, 할인 등으로 본격적으로 확대된 것이 이 시기다. 지난 2007년 250조원을 넘어선 연간 카드 사용액은 지난해 300조원을 돌파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채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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