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문화카페 연 뮤지컬배우 이승진씨
파이낸셜뉴스
2009.07.27 20:39
수정 : 2009.07.27 20:39기사원문
“강남 한복판에 이런 카페를 차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문화레스토랑 ‘아이해브어드림’ 이승진 사장(36)의 말이다. 뮤지컬과 연극, 영화판에서 촉망받는 배우였던 그가 최고경영자(CEO)란 이름표까지 달게 된 건 2년전이다.
“정시에 출근하고 짜여진 커리큘럼대로 생활하는 게 답답했어요. 제가 나오는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했구요.”
이씨는 2001년 개봉한 영화 ‘라이방’에 출연하기도 했다.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그해 백상 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을 받는 등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 무렵 아버지가 병석에 들었고 모든 일을 그만뒀다.
“2년간 아무일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연극무대를 전전했죠. 2006년 ‘작은 술집이나 하나 차리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빌린 돈은 1억원이 좀 안됐다. 홍대 근처를 돌아다니며 마땅한 장소를 물색했다. 손에 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허름한 지하.
어둡고 더러운 그곳을 식음료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려던 그는 문득 ‘너무 흔하다’는 생각을 했다. 홍대 앞에는 비슷한 카페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는 큰 마음을 먹고 강남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회사원 연봉과 맞먹는 월세에 까무라치게 놀라기도 여러번,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강남역엔 온갖 최신 상점과 유명 음식점이 있지만 사실 ‘문화 불모지’에요. 개성있는 공간이 없죠.”
결국 지하철역과 이어진 빌딩 지하 3층에 둥지를 틀기로 마음먹었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 수십개의 병원이 입점해 있어 유명한 곳이었다.
그는 인테리어 업체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가게를 꾸몄다. 탁자와 화장대, 소파 등 남이 버린 것을 주워와 깨끗이 손질해 놓았고 온갖 액자와 포스터도 모두 재활용한 것들이다. 연휴에는 손수 가구를 만들고 가게 앞은 빈 와인병을 진열해 장식했다. 돈 한 푼 안들이고 멋을 부렸지만 개중에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그림도 몇 점 있다.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친구가 기증한거에요. 제 가게가 너무 휑하다고.”
지난 2007년 문을 연 이 가게의 단골은 무려 2900여명이다. 이들은 유명 포털의 카페를 통해 MT도 가고 정기모임도 갖는 등 친목을 다진다.
식당 한 쪽에는 번듯한 무대가 마련돼 있다. 여기에선 1시간 내외의 단막극이 공연된다. 이제까지는 주로 친분이 있는 배우들에게 무대를 내주었지만 그에겐 사실 다른 포부가 있다.
“미국의 오프브로드웨이란 게 사실 별게 아니에요. 이렇게 작은 술집이나 레스토랑에 있는 무대에서 공연하다 인기를 끌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거거든요. 저는 제 가게를 한국의 오프브로드웨이로 만들고 싶습니다. 배우로 못다 이룬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당분간은 CEO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려고 해요.”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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