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파이낸셜뉴스
2009.10.22 16:19
수정 : 2009.10.22 16:19기사원문
남자들은 모른다. 여자란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변덕스러운지. 여자들도 모른다.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단순하고 무책임한지. 사랑으로 덮지 않는 한 다른 성(性)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성의 영역을 넘어선 작가들에게 매번 감탄하는 이유다.
고 장진영, 엄정화가 주연한 영화 ‘싱글즈’의 원작 ‘29세의 크리스마스’는 57세의 남자작가 가마타 도시오가 쓴 것이다. 29세의 여성과 겹치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그의 작품은 TV드라마는 물론 소설까지, 한국에 건너와서는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 반복 재생되며 수많은 여성 팬을 만들어냈다. 연극 ‘아트’도 마찬가지다. 중년 남성들의 자존심 싸움과 알량한 속내를 풍자한 이 작품은 프랑스 여류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솜씨다.
주인공은 일과 사랑을 두고 고민하는 20대 후반 여성이다. 이 한 가지만 들어도 작품의 큰 그림은 짐작할 수 있겠다. 승부는 섬세함에 달렸다. 사소해 보이는 행동과 말에서 무릎을 탁 칠만한 공감대를 뽑아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여성의 마음에 한발짝도 들어가지 못했다.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의 삶, 어떤 세밀함도 보여주지 못한 채 낡고 고루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장 큰 허점은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다. ‘소울메이트’를 주제로 삼았다면 친구로 등장하는 은성과 혜성의 관계에 좀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천방지축 혜성은 의류쇼핑몰을 운영하는 은성에게 툭하면 신세를 진다. 카드빚 400만원을 갚아달라는 부탁도 서슴지 않는다. 군소리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받아주는 은성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제목만 보면 혜성은 어엿한 주인공인데 두 남자와 은성의 사랑 구도에 밀려 추임새나 넣는 주변인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 작품은 은성과 혜성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실패한데다 은성의 삶 역시 겉핥기만 하다 말았다.
상사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회사를 나오게 된다는 설정이나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낯익고 지루하다. 여기에 동년배라기보다는 노회한 어르신처럼 응수하는 혜성 역시 당혹스럽다. ‘이것아, 돈 많은 남자한테 가야 행복한거야.’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여러 나라를 떠도는 ‘멋진 캐릭터’ 혜성은 왜 그런 조언밖에 해줄 수 없었을까.
알파걸과 골드미스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들을 타깃으로 한 공연도 우후죽순 생겨난다. 입소문을 끌고 싶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척’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치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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