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넵스마스터피스2010’ 자연을 담은 예술 눈길

파이낸셜뉴스       2010.08.19 09:04   수정 : 2010.08.19 06:13기사원문

▲ 제주 더클래식 골프장에 설치된 이명호의 ‘나무’는 순간 퍼포먼스가 아니라 이번 대회기간 내내 전시된다.


【제주=박현기자】“와우∼ 저게 뭐지?.

카트를 타고 가던 골퍼들이 멈춰섰다. 골프장 한가운데, 나무 한 그루를 앞에 두고 배경으로 쳐진 대형 하얀광목천이 바람에 눌려 펄럭거렸다. 바람이 머물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듯 가지가 휘날린 고목나무는 작품 주인공이 됐다. “감동”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마치 천막극장에 온 듯 신나고 신기해했다.

지난 17일 제주 남원읍 더 클래식 골프앤 리조트는 분주했다. 19일∼22일 ‘넵스 마스터피스 2010’ 대회를 앞두고 문화마케팅이 한창이었다. 올해 두번째로 열리는 이 경기는 골프와 아트의 만남을 선보인 혁신적인 컨셉의 골프 대회로 주목받고 있다.수상 트로피도 참여작가의 작품으로 제작했다.

6억원의 상금이 걸린 골프대회와 함께 ‘꿈의 주방가구’ 넵스가 올해 마련한 전시는 ‘Moment made by green전. 골프클럽이나 벽에 거는 단순전시가 아니다. 골프장 잔디밭에 보란듯이 설치된 작품은 전통적이고 고정된 미술의 개념을 한방에 날린다. 지난해 18명의 작가에서 올해 5명(고명근 이명호 이중근 한석현 박천욱)의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는 풍경으로서의 자연이 예술로 전환되는 상상밖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사진조각 고명근작가는 ‘물의 집’을,이중근은 제주의 돌을 탑처럼 쌓아 바람의 길을 만들었다. 한석현의 상추를 우상화한 작품으로 유쾌함을 더하고, 일상속 물건들을 랩핑한 박천욱의 작품은 초록의 잔디밭에서 기괴하면서도 알듯 말듯 한 형상으로 재탄생해 트릭의 진수를 선보인다.

▲ 사진조각으로 유명한 고명근 작가는 골프장에 파란색의 가로세로 2m 크기 물의집을 전시했다.


대회를 이틀 앞둔 골프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왔다갔다 작업하는 사진작가 이명호(36)를 만났다

사진으로만 보던 ‘Tree’ 작품은 골프장에서 더욱 빛났다. 드넓은 초록의 잔디밭에 세워진 작품. 멀리서보면 그림 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조각 설치 같은 예술이라는 아우라를 내뿜는다, 골프장에 있는 수많은 나무를 고르고 선택된 나무뒤에 수십m 높이의 가림막을 세우고 흰 광목천을 매달았다. 자연공간에 흰광목천 하나 댔을뿐인데 ‘예기치 않은 마술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초록의 골프장에 10m가 넘는 철골을 세우고 흰 광목천을 씌우는 작업은 거대했다. 골프장의 아름다운 능선, 선명하고 화창한 그림같은 날씨는 무더웠다. 작가는 흘러내리리는 땀을 닦으면서도 허허허 연방 웃음을 터트렸다.

“고단한 여정 자체가 작업의 즐거움이죠. 전시장에서 결과물로만 보는 것보다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의미가 있어요”

작업은 단순하다. 대상을 고르고 흰광목을 대고 사진찍고 바로 철수한다. 많은 사람의 공력과 오랜시간은 필수, 사진은 남지만 무모해보였다. 그는 “사진으로 찍힌 후 회화적인 느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봐야한다”며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 동영상을 촬영해 쌓아져 나가져 가는 과정들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연을 포장하는 행위로 현대미술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크리스토가 구조물을 천으로 싸버리린다면 이명호는 자연을 떠내는 작업이랄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에 캔버스를 들고 나와 실제 대상 뒤에 설치할뿐이다. 고정관념을 깨버린 시공감각적 확장이다.

“나의 예술은 한마디로 환기라고 할수 있어요. 그냥 환기시키는 것, 일종의 살짝, 자연속에 담갔다가 꺼내는 것이죠. 그림을 그려서 지워버리듯 나의 작업은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설치하고 바로 치워버려야 의미가 있어요.”

▲ 기괴한 동물형상으로 보이는 박천욱의 랩핑시리즈.알고보면 의자두개를 묶어 포장지처럼 싸버린 조각품이다.


꿈의 유효기간도 없지만 상상력의 한계도 없다. 서울대 수학과를 중퇴하고 시작한 사진은 그를 예술가로 살게했다. 중앙대학교에서 사진으로 석사를 마치면서 ‘즐거운 인생’이 시작됐다. “인터넷에 당신 사진을 올려도 될까요”. 2005년 파리에 있는 잡지 편집장이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졌다.

일취월장. 2006년 사진비평상을 수상했고, 2009년 아모리쇼에서 출품작의 모든 에디션이 솔드아웃됐다. 덴마크 유력일간지 폴리티켄 문화면에 소개되고 트리엔날레 가장 주목할 작가로 꼽혔다.사진을 주 매체로 다루는 갤러리가운데 ‘2009 아모리쇼 10대 갤러리’인 뉴욕의 요시밀로 갤러리는 그를 전속작가로 선정했다.

전통적인 예술형식을 벗어나 자연을 그대로 끌어들인 작품. 국내외 미술계는 “미술사의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는 호평을 보내고 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러시아로 날아갑니다. 시베리아 울란바토르로 가서 바이칼 호수를 찍어내고, 다음엔 울릉도 같은 ‘떠있는 섬’자체를 찍어낼 계획입니다. 사진 재현행위 특성상 11명의 스텝이 우르르 움직이죠. 한번 나갈때마다 1억원은 기본입니다.
스폰과 펀딩도 제 담당이죠. 회사이름요? 이명호입니다.하하”

한편, 오는 22일 제주에서 전시가 끝나면 5명의 참여작가들의 작품은 대지미술에서 기록물의 성격으로 다시 기획된다. 이명호는 제주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영상과 스넵사진으로 담아 선보이는등 ‘넵스마스터피스 2010’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을 기록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은 서울 삼성동 넵스페이스(9월14일∼10월22일)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hyun@fnnews.com 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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