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이랑 노인도 못 믿겠어요” 不信 사회 ‘한숨’

파이낸셜뉴스       2011.09.19 15:06   수정 : 2011.09.19 14:59기사원문

“집 앞에서 잠옷을 입은 한 여자아이가 울면서 엄마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요즘 신종 인신매매 소문 때문에 아이 말도 못 믿겠더라구요. 세상이 왜 이렇게 흉흉해진건지..”

주부 A씨는 집 잃은 아이를 도와주면서도 못내 씁쓸했다.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들은 아이와 노인을 이용한 ‘신종 인신매매 수법’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 A씨는 “세상이 하도 험하다보니 순수한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조차 믿지 못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아이와 노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악용해 납치한다는 이야기가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게시판과 SNS를 타고 퍼지면서 누구도 믿기 힘들어졌다는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신고된 적이 없다는 ‘괴담’이라고 밝혔지만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좋다’는 마음에서다.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는 아이를 이용한 범죄가 발생했다는 글이 올라와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누리꾼 B씨에 따르면 그는 서울 광장에서 귀가하던 중 샛길에서 5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마주쳤다. 아이는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달라며 B씨를 어둑한 골목 앞으로 데려갔다.

골목에 다다른 순간 B씨는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덩치가 크고 작은 5명의 남성이 “왔다”라고 외치며 걸어왔기 때문. 살아야겠단 생각에 무작정 뛴 후 도움을 청해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19일에는 노인에게 범죄를 당할뻔 했다는 C씨의 이야기가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왔다. C씨는 경기 안양시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 때 한 노인이 “안양역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되냐”고 물어왔고 느낌이 이상했던 C씨가 모른다고 하며 걸음을 서두르자 욕을 하며 쫓아왔던 것.

급하게 택시를 잡아탄 C씨는 창 밖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리를 절뚝 거리던 노인이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C씨는 “경찰에 신고하자 ‘큰일날 뻔 했다’고 했다”면서 “이제 노인이 길을 물어와도 대답을 못해줄 것 같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그 밖에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누리꾼 D씨도 “버스 정류장에서 신앙을 홍보하는 아주머니 2명이 냉커피를 건넸는데 찜찜해서 거부 했더니 두 팔을 잡고 끌고 가려고 했다”면서 “그 때 냉커피를 마셨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는 글을 온라인상에 올려 삽시간에 퍼졌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괴담이 퍼지다 보니 모르는 이가 도움을 청해와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 ‘불신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70대 최모씨는 “지하철 매표 기기를 어떻게 이용 하는지 몰라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대다수가 바쁘다고 거절해 한참만에 탈 수 있었다”면서 “점점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서로 믿지 못하고 외면해야하는 현실이 되가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직장인 김모씨(33)도 “얼마 전 놀이공원에 갔다가 한 할아버지가 아이가 예쁘다고 사탕을 줬는데 나중에 먹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면서 “의심하기 싫은데 믿지 못하게 된 세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헝가리 출신 사회학자인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저자 프랭크 푸레디는 “낯선 사람에게 차를 태워주는 히치하이크는 이타적인 행동이 아닌 범죄의 전조로 이해된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시민의 책임을 연습할 기회가 상실되고 말았다”며 우리 주변의 공포에 대해 진단했다.


프랭크는 “공포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상화한 이유는 ‘인간불신’에 있다”고 설명한다. 불신 회복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위험에 대한 경고만으로는 공포를 확대재생산 할 뿐이다”라면서 “사람은 해답이지 문제가 아니다. 공포에 대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umaned@fnnews.com 남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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