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라민 톨루이 핌코 이머징 마켓 공동대표

파이낸셜뉴스       2011.10.31 17:20   수정 : 2011.10.31 17:20기사원문

1989년 11월 9일 서독과 동독을 갈라놓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이제야 자본주의 꽃이 제대로 피기 시작한 것이고 조만간 온 천하에 그 꽃이 만개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사회주의와의 소모전에서 승리했으니 자본주의는 이제 내부동력만으로 장밋빛 가득한 경제를 만들어주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염원했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 불행하게도 아직 자본주의 세상은 포연이 가득하다. 99%의 보통사람이 1%의 가진 자를 향해 내뱉는 분노가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 월가에서 터져나오고 자본주의 발원지 유럽은 재정위기로 휘청이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불똥은 세계의 엔진 중국으로 튈 태세다. 위기 사이클은 점점 빨라져 전문가조차 당혹해하고 있다. 글로경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2회에 걸쳐 진단해본다.<편집자주>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세계최대 채권투자회사인 핌코로 찾아가는 길에서 역설적으로 미국 경제의 번영과 견실함이 느껴졌다. 길은 곧고 넓었으며 주변의 조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경제적 풍요함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재정적자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핌코가 위치한 곳이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인 뉴포트 비치(LA 남쪽)였기 때문이리라. 외형적 풍요함과 달리 1조달러의 자금을 운영하는 세계적 큰 손 핌코는 올해 내부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연초 미국 국채 하락에 베팅했다 안전자산 랠리를 놓쳤다는 평가에다 경제전망에서도 일부 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만난 직원들은 젊고 활기찼으며 자신감에 차있었다. 특히 이머징 마켓 공동대표 라민 톨루이는 명쾌하면서도 논리적으로 현재의 금융위기를 해석했다.

■대담=이장규 부국장

― 유럽발 금융위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있는데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뭔가.

▲유럽위기는 세계 경제구조가 변화하는 가운데 나타난 현상의 일환이다. 채무가 많은 선진국과 부채가 적은 개발도상국 간의 불균형 상태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위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 사안에 집착하기보다 거시적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유럽 위기에 대한 대응책이 재빨리 나오지 못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이번 사태에 대해 유럽 등 각국 국민과 지도자들이 정신적,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럽의 각국 정부 또한 체계적 대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복잡한 문제에 대해 해결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것이다. 최근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게 중요하다.

―유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있지 않을까.

▲다시 얘기하지만 먼저 그리스 등 관련 국가의 국민이 정신적·정서적으로 (과거 유럽의 영화에 집착하지 않고)이번 사태를 이해하고 해결할 자세와 태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위기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아울러 유럽 각국의 이해가 다른 정파 간에 정치적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채무감축에 대해 일방적 강요보다 합의와 협상에 의해 문제를 조율하고 타협안을 마련해야 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각국의 단기적 위기 해결과 장기적 경제안정 사이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재정감축과 세금인상을 통한 재정적자 축소가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경제를 요동치게 할 수 있다. 역으로 단기적 경제안정과 금융시장을 달래기 위한 긴급자금 방출 등 대증요법은 장기적으로는 경제구조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균형을 이루는 정책이 절실하다. 유럽위기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단계적(스텝 바이 스텝) 접근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먼저 금융시장이 건전해지도록 조율해야 한다.

―유로존 국가의 디폴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나.

▲유로존 국가들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긴밀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가 유로존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디폴트를 선언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오면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이 단기적으로 요동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경제가 끝장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장기적으로 세계경제는 현재 각국의 경제현실과 국제금융시장의 역학관계를 반영하는 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핌코가 최근 투자전략을 바꾼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단기적으로 유럽과 미국을 리스크가 큰 시장으로 보고 있다. (이 시장에 대해선)리스크를 줄이고 대처하는 포트폴리오를 가져 가려 한다. (미국과 유럽시장의 경우)리스크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투자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크게 보면 현재는 투자자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고심해야 할 시점이다. 투자를 잠시 쉬더라도 자신의 투자 바구니가 세계경제의 급변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회일 수도 있다.

가령 이머징 마켓은 전 세계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글로벌 성장률의 절반을 담당한다. 하지만 전 세계 거대 기관투자가의 포트폴리오는 이런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연·기금의 2%만이 신흥국에 투자하고 있다. 신흥시장에 대한 낙관론자만이 이 시장에 투자하는 시대는 끝났다. 전통적으로 선진시장에 대부분의 자산을 투자하던 (미국·유럽의)연·기금들은 신흥시장으로 시야를 돌려야 한다.

―핌코가 아시아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린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획기적으로 늘린다. 핌코가 새로 출시하는 글로벌 본드인덱스(정식 명칭은 '글로벌 어드밴티지 인덱스')의 경우 신흥시장의 투자비중을 기존의 3%에서 33%로, 획기적으로 10배를 늘릴 계획이다. 이 펀드에 담는 상품은 아시아채권이 핵심이 될 것이다. 이처럼 지역별 자산재분배는 향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연·기금의 투자전략에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핌코는 아시아 투자비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아시아에 투자 및 운용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한다. 뉴비치 본사와 더불어 내년 초 싱가포르에 이머징 마켓 본부를 설치, 공동운영하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아시아본부를 신설하고 공동대표 중 한 명인 나의 사무실을 싱가포르로 ?기는 것은 아시아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아울러 아시아 경제상황을 본사 전체와 글로벌 고객에게 알리려는 의도에서다. 아시아 포트폴리오 위원회를 구성, 아시아의 경제상황과 투자지역 및 투자상품을 심도있게 분석할 것이다. 아시아 고객에게 동유럽과 중남미 등 역외 신흥시장을 포함, 미국·유럽 등 전 세계 투자 상품을 소개하는 것도 이머징 마켓 본부 이전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아시아 비즈니스가 앞으로 핌코사의 핵심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최근 중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세계 원자재 시장의 블랙홀이자 글로벌 생산기지, 중산층 급증에 따라 소비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중요성은 더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투자자로서 중국의 성장이 지속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금융 쪽이다. 특히 부실채권에 대해 면밀히 분석 중이다.

사실 급속히 성장하는 경제에는 언제나 버블이 있었다. 문제는 규모다. 감내할 만한가가 중요하다. 핌코가 파악한 바로는 (중국 부실채권과 관련해)가장 심각한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중국 정부는 이를 관리하고 감당할 만하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스템의)신뢰에 다소 흠집이 나고 스트레스가 있고 부동산시장에 부정적 신호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다.

―한국 경제에 대해 전망한다면.

▲세계 경제의 급변에 따라 한국도 다른 전략을 요구받고있다. 전통적 수요국가인 미국과 유럽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으므로 기존과 다른 대내외 전략이 요구된다. 하지만 한국은 최고의 인적자원, 대규모 자본투자를 통한 제조업 경쟁력, 역동적 비즈니스 역량 등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가진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면 한국 경제의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 다만 내수시장을 키우고 신흥국 등 수출국을 다변화해야 하는 숙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본다.

/jklee@fnnews.com

■핌코와 라민 톨루이는

핌코는 1971년 설립된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다. 운용자산이 1조3000억달러를 넘어 워런 버핏이 운용하는 버크셔해서웨이의 3∼4배에 달한다. 창업자는 채권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빌 그로스, 대표 펀드는 2400억달러의 운용자산을 가진 토털리턴펀드다. 연금펀드, 퇴직연금 펀드 등 미국에만 800만명 이상의 개인 및 법인고객이 있고 각국 중앙은행에도 자산운용 및 자문서비스를 제공한다. 종업원은 1900명.

라민 톨루이 대표는 핌코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이머징 마켓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2006년 입사 전에는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으로 이코노미스트 팀을 관리·운영했고 라틴아메리카 금융정책 자문 역할도 했다. 2001∼2003년 브라질, 터키, 우루과이가 금융위기를 겪을 때 수석 고문으로 위기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미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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