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여성CEO 장영신 회장, ‘주부 경영’으로 재계 신화창조

파이낸셜뉴스       2014.06.08 17:00   수정 : 2014.06.08 16:59기사원문



국내 '여성 최고경영자(CEO) 1호'인 장영신 회장(사진)이 일궈낸 애경그룹의 60년사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주부 경영의 신화'다.

장 회장은 지난 1970년 막내아들인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을 낳은 지 사흘 만에 남편 채몽인 사장을 심장마비로 떠나보낸 후 경영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채몽인 선대 사장이 광복 직후 설립한 대륭양행은 당시 국내 무역업계 순위 7위 안에 들 정도로 착실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애경그룹의 60년 역사를 만든 것은 자타공인 장 회장이다. 지난 1971년 남편의 1주기가 끝나자마자 장 회장은 스스로 경리학원에서 복식과 부기를 배우며 경영수업을 받았고, 이듬해 8월부터 회사에 정식 출근했다. 경영 참여에 대해 시댁과 친정은 물론 회사 임원들까지 반대가 심했지만 장 회장은 장남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과 함께 그룹 규모를 재계 50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장 회장은 1972년 8월 1일자로 대표이사에 취임, 회사 경영에 공식 참여한 이후 애경유지공업의 지표를 화학분야로 재정립해 대전공장을 준공하고 애경화학을 설립하는 등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트리오' 판매액이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경영정상화가 이뤄졌다.

지난 1973년 1차 석유파동 당시 장 회장의 임기응변 일화도 유명하다. 이때 직격탄을 맞은 삼경화성(1970년 설립한 무수프탈산 제조사, 현재의 애경유화)은 공장을 가동한 지 채 1년도 안 돼 원료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당시 대표이사였던 장 회장은 한국에 파견돼 있던 걸프사의 미국인 사장을 직접 만나 물물교환 중개요청을 했다. 걸프사 쪽에서 그런 일을 왜 우리에게 부탁하느냐고 묻자 "삼경화성은 한국의 석유화학사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기업이다. 한국의 석유화학사업이 발전해야 걸프사에도 이익이 될 게 아닌가"라고 당당하게 장 회장은 요구사항을 밝혔고, 결국 걸프사의 주선으로 원료를 차질 없이 공급받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는 이례적으로 미국의 대기업(걸프사)이 당장 이득이 없는 일에 발 벗고 나선 첫 사례였다고 한다. 이때 큰 위기를 모면한 삼경화성은 현재 연매출 1조원을 넘는 애경유화가 됐다.


장 회장은 신년사에서 "지난 애경 60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뜻하지 않은 고난과 역경을 겪지 않은 해가 없었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 애경은 지난 60년간 한 단계 한 단계 쉼 없는 성장과 도약을 해왔다. 이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애경인의 저력과 프런티어 정신으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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