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합격증만 있으면..” 대학가에 부는 마이너스 통장의 유혹
"입사 전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는 화면만 사진으로 찍어오시면 돼요. 최대 3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하시고, 대출 승인까지 길어야 이틀이면 됩니다. 오늘 신청하면 내일 바로 대출받으실 수 있는 거죠."(A대학교 내 하나은행 지점 관계자)
"마통(마이너스통장 줄임말)요? 합격 통지 받자마자 바로 만들었는걸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을 보더라도 대기업 입사 앞두고 마통 안 만든 사람 거의 없을 정도예요. 원래는 입사 전 해외여행을 목적으로 500만원가량 대출받을 생각이었는데, 대출 한도가 워낙 많아 이것저것 사고 싶은 거 사다 보니 벌써 마이너스 대출금만 700여만원 정도 됐네요."(하나은행 통장대출상품 이용 대학생)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수입원이 없는 대학생들이 마이너스 통장을 통해 거액을 대출금을 받을 수 있게 돼 과소비로 인한 연체와 신용불량자 양산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큰 사회적 문제가 됐던 '카드 사태'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마통 유혹'에 휘청이는 대학가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하나은행은 대기업 취업자(최종합격자 포함) 및 취업 예정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마이너스대출 방식의 '하나패밀리론'을 판매하고 있다.
여름방학 및 하반기 취업시즌에 맞춰 출시된 특판 상품이다. 최고 3000만원 한도로 1년 만기 일시 상환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대기업 최종합격 증명서(일부 기업 제외)만 있다면 대출이 가능하다.
보통 하나은행과 달리 다른 시중은행들은 마이너스통장에 대해선 입사 6개월이 지나고, 4대 보험 가입을 기본 발급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B대학교 내 하나은행 지점 관계자는 "대출금리는 보통 5% 전후로 지점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며 "통장대출(마이너스통장)이 대출금을 한꺼번에 받는 형식보다 보통 금리가 0.5%포인트 이상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C대학교 인근 하나은행 지점 관계자는 "6월에서 8월, 12월에서 2월 정도씩 매년 거의 정기적으로 내놓는 특판 상품"이라며 "보통 이 기간에 판매되는 마이너스통장 건수는 다른 때보다 2배에서 3배 이상 급증한다"고 전했다.
특히 하나은행 지점끼리의 특판 경쟁도 치열하다. 지점별 실적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판매되는 마이너스통장은 한도 소진용 상품이다 보니 대학생 고객이 적은 지점에서는 수요처를 찾아 다닐 정도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측은 "하나패밀리론은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판매돼온 스테디셀러 신용대출 상품으로 일반 대학생에게 제공되는 상품이 아니고 대기업에 입사 예정인 대학생, 즉 미래의 잠재 우량고객에게 제공되는 대출 상품"이라며 "10여년 동안 판매해본 결과 연체나 부실도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2금융권도 '마통' 판매
현재 하나은행 외에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일부 저축은행들은 아예 채무 능력이 전무한 일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이너스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을 정도다. 한 저축은행의 경우 신분증 및 학생증 사본(주민등록 등·초본 첨부)만 있으면 소득 여부에 상관없이 최대 300만~500만원가량을 대출해 주고 있다.
해당 저축은행 대출상담사는 "체크카드처럼 언제든지 대출 한도 내에서 현금이 필요하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현금자동인출기(CD)에서 현금 출금이 가능하고 신용카드 대리점에서 카드 결제도 할 수 있는 상품"이라며 "20대 초반이더라도 대학생만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꼭 학생증 사본을 첨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이들 마이너스대출 상품의 주 대상이 채무관리가 미흡한 대학생이라는 점"이라며 "하루 이틀 만에 대출 승인이 나는 등 대출 절차도 워낙 간단하다 보니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대출금을 사용하다 고금리인 연체이자 때문에 빚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입사 2년차인 30대 직장인은 "일시 만기 상환일이 지났지만 1년 전 사용한 마이너스통장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을 여력이 되지 못해 최근 몇 달간 계속 이자만 납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취업이 되고 바로 학자금 대출까지 분할상환을 하고 있다 보니, 막상 그때 계획 없이 사용했던 마이너스 대출금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토로했다.
gms@fnnews.com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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