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이라면

파이낸셜뉴스       2015.01.11 16:50   수정 : 2015.01.11 22:02기사원문



1000만 관객 돌파 초읽기에 들어간 영화 '국제시장'. 60대 중반의 어느 어르신은 영화를 보면서 몇 번씩 손수건을 적셨다고 하셨다. 젊은 후배는 부산에 있는 어머니와의 새해 통화에서 "네 아버지가 너무 울어서 앞으로 함께 영화를 못 보겠다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분들 모두 영화 상영 2시간 동안 배고프던 시절 뭐든 해서 자식들 먹여살리고 가르치던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어린시절로 돌아갔을 것이다.

국제시장에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이 잠시 나온다. 구두닦이를 하는 어린 주인공에게 "네 꿈이 뭐냐"고 묻는다. 소년은 "선장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정 회장은 "내 꿈은 큰 배를 만들어 외국에 파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격려해주고, 당시 경제개발의 상징인 GMC 트럭을 타고 씩 웃으며 떠난다

소년은 전쟁 직후의 폐허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큰 배를 만들어 외국에 팔 수 있을지 믿지 못하는 표정이다. 정 회장은 배를 건조할 독(dock)도 없이 해외에서 선박을 수주한 전설의 주인공이다. 26만t짜리 선박 설계도면을 빌려 그리스 선박왕에게 "당신에게 현대에서 만드는 첫 선박을 바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해 2척을 따냈다. 정 회장은 한쪽에서는 조선소를 짓고 또 다른 한쪽에선 선박을 건조해 2년3개월 만에 인도했다. 조선업계에서는 말도 안 되던 일을 창조한 것이다.

지금 경제위기라고 한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렵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문득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정주영 회장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갔을지 궁금하다.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내려간 국제유가, 건국 이래 가장 낮은 금리, 영역이 허물어진 무한한 글로벌 시장. 지금은 기회라고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을까. 적어도 '엔저 때문에…'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아서' 이런 핑계는 대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오일쇼크 여파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정 회장도 위기를 맞았다. 그는 돌파구는 '오일달러'라고 판단하고 중동으로 날아갔다.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쾌거를 이룬 것이다. 당시 수주금액이 9억3000만달러. 그때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30%에 달하는 큰 공사였다. 이후 한국 경제는 중동건설 붐을 일으키고 위기를 극복했다.

어디 정 회장뿐이겠는가. 정미소로 출발해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일군 이병철 회장, 작은 포목점으로 출발해 LG그룹을 만든 구인회 회장, 트럭 한 대로 글로벌 수송물류그룹으로 도약시킨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지금 같으면 환갑이라 할 수 있는 불혹의 나이에 택시 2대로 창업해 대기업으로 키운 금호그룹 박인천 회장 등 한국 경제와 성장궤적을 함께한 기업 1세대들. 모두 영웅이다.

벌써 새해가 된 지 열흘이 넘었다. 올 한 해는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정부도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보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어 안쓰러울 정도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고난의 시기에 집념과 도전으로 어려움을 헤치고 우뚝 선 그들을 만나보면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궁금하다. 정주영 회장이라면 어떻게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지.



차석록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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