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흥망성쇠의 교훈
파이낸셜뉴스
2015.05.27 17:21
수정 : 2015.05.27 17:27기사원문
중국의 영어명, '차이나'는 진(秦)나라의 중국어 발음 '친'에서 유래됐다. 이것은 진나라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새로운 나라가 생기고 멸망하던 춘추시대와 일곱 강국이 겨루던 전국시대를 거치며 최후의 승자가 된 나라는 '진'이었다.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 산악 변방에 불과한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2200년 전 진나라가 택한 정책은 개방화,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한 표준화, 성과제 도입 등 요즘의 자본주의 발전논리와 놀랄 만큼 일맥상통한다.
진나라는 과감한 개방 정책을 취했다. 조나라 출신의 여불위를 최고지위에 중용한 데 이어 천하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도 각각 초나라와 한나라 출신이었다. 어느 날 진왕은 한비자의 책을 읽다가 "이 사람을 한번 만나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며 감탄했다. 그는 한비자를 모셔 오기 위해 한나라로 쳐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백성들을 이민으로 적극 받아들여 황무지를 개척하게 했다.
또한 진나라는 표준화, 규격화로 효율성을 높였다. 문자를 통일하고 통화와 도량형을 표준화해 교역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도로를 정비하고 마차 바퀴 축의 규격도 통일해 물류를 원활하게 만들었다. 전국을 군현제로 정비해 중앙에서 지방까지 일사불란한 행정체계도 갖추었다.
기원전 221년, 마침내 진왕은 제나라를 물리치고 천하통일의 과업을 달성했다. 한비자와 이사 등 법가 사상가들이 제시한 개혁안 덕분에 부국강병을 이룬 것이다. 진나라 왕은 통일 중국을 황제국으로 승격시키고 자신을 시황제라고 명명했다. 그는 자신이 발전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데 도취되어 자신의 제국은 만세대까지 계속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천하무적 같았던 진나라는 통일 후 불과 16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그러면 가장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체제를 갖춘 진나라가 왜 이렇게 어이없이 무너진 것일까. 너무 자신의 성과에 도취되고 다른 쪽을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자신을 반대한 유학자들을 생매장하고 유교경전을 불태우는 '분서갱유'를 자행했다. 또한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신상필벌은 상보다는 가혹한 벌에 치우치고 법치주의는 인간의 개별적인 사정을 무시한 채 너무 기계적으로 적용됐다.
진시황이 죽은 이듬해, 남부의 가난한 한 무리의 농민들이 북쪽 수비의 명을 받고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긴 장마로 길이 막히면서 도저히 기일 내에 당도할 수 없게 됐다. 진의 엄한 법률은 어떤 사정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명령받은 날짜를 못 맞추면 참수형에 처해진다. 그러자 이들은 늦게 가서 죽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며 난을 일으켰다. 이 같은 반란이 도처에서 일어나며 진나라는 붕괴하고 만다.
인센티브에 의한 경제 원리는 사람들을 움직이고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상사가 너무 한쪽에 치우쳐선 곤란하다. 인간은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진론'을 쓴 가의는 "천하를 쟁취하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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