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①) 최우수 국감상 받은 의원, 국감 20일 중 5일만 출석
파이낸셜뉴스
2015.06.02 17:04
수정 : 2015.06.02 21:54기사원문
3부. 입법 시스템, 이젠 품질이 우선 <1> 우수의원상의 허와 실
최우수 국정감사상 받은 의원, 알고보면 국정감사 20일 중 4일 출석… 직능단체는 賞 주고 곧바로 민원… 그래도 선거때 홍보 위해 수상경력 많을수록 좋아
상의 남발이다. 제대로 된 평가기준에 따라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 받는다면 수상자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국회 관계자와 시민단체들의 중론이다.
■의원상 범람…못 받으면 바보
우수의원상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 즉 국민을 대표해 법률을 제정하고 국정 심의를 제대로 해낸 의원들이 받아야 하는 상이다. 유권자들이 의원 '옥석 가리기'할 때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수상 경험이 없는 의원을 찾기가 어려워 '의원우수상은 개근상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좋은 취지로 시작됐지만 유권자를 현혹하는 정보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평가기준도 단체마다 다르다. 상을 주는 단체 입장에서도, 의원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운 대목이다. 한 단체 관계자는 "수상 명단에서 제외된 의원들의 항의 전화가 올 때마다 곤란을 겪고 있다"며 "다른 단체에서는 상을 받았는데 이 단체에서는 왜 수상 자격이 안되느냐고 문제제기를 하면 할 말이 없다"고 털어놨다.
정량적.정성적 평가기준을 갖춰 가장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은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주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상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은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처음 국정감사 모니터링을 시작한 단체이며 이 상을 제정한 지 올해로 16년 째로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와 함께 국회사무처에서 주는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의원상'도 국회의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이다. 한 해 동안 국회의원들의 법안 대표발의(10%)와 가결 건수(90%), 본회의 참석률 등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우수 의원 5명, 우수 의원 25명을 선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의 평가기준에도 맹점은 있다. 가령 본회의 참석율은 개의, 속개, 산회, 출석을 함께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 출석 여부만 확인하기 때문에 평가지표로서 가치가 없다는 지적이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기획실장은 "입법 정책 개발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부분도 계량화가 안 되는 기준이라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모 중진 의원은 최우수 국정감사 의원상을 받았지만 그가 국정감사에 온전히 자리를 지킨 것은 20일 중 나흘 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평가지표의 점수가 월등히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오전에 잠깐 '얼굴 도장찍기'가 평가에 반영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원들끼리 수상 경험을 가지고 말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빈번하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한 지역방송에서 L의원과 K의원이 의원상을 놓고 '짝퉁논란'을 벌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L의원이 국정감사 우수의원상을 받은 것을 내세우니 K의원이 "친하면 아무나 주는 상, 짝퉁상을 자랑하느냐"고 맞받아친 것. 그러나 이후 K의원 또한 자신이 '짝퉁상'이라고 발언한 상을 받았다고 홈페이지에 올린 점이 알려져 빈축을 샀다.
■의원상 집착에 피곤한 건 보좌진
'우수의원상' 수상 경력이 지역유권자 표 관리에 유용한 만큼 상을 받으려는 의원들의 노력도 천태만상이다. 상에 집착하다 보니 '꼼수'를 쓰는 의원실도 있다.
모 단체 관계자는 "사소한 기준 하나를 바꾸면 열 몇개 법안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법안들만 골라서 발의하고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원상을 받으려 그런 꼼수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모 의원은 법안제출 수로 1등을 해 상을 받았다가 정작 자신이 낸 법안의 구체적인 이름을 몰라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다른 의원들이 낸 법안에 사인을 해 공동발의자로 수없이 이름을 올려 공적을 내는 의원도 있다.
유착관계 때문에 수상 이후에는 의원실도 피곤해진다. 상을 주겠다는 기관들간의 과열경쟁이 붙는 건 물론이고 상을 미끼로 수상 기관이 의원실에 민원을 들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모 의원실 관계자는 "직능단체에서 주는 상은 100% 로비"라며 "갑자기 등장해 상을 주더니 '이런 저런 것을 해달라'로 민원을 들이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단체도 다를 바 없다"며 "비정부기구(NGO)가 명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세미나를 자주 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찾아와 협찬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하거나 단체와 연관된 수많은 민원을 들고 찾아온다"고 털어놨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연관된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상을 몰아주는 경우도 생긴다. 당에서 주는 상은 '당에 충성한 사람'에게, 단체에서 주는 상은 '단체와 친한 의원'에게 준다는 비판도 받는다. 급기야 2년 전에는 보좌진들이 '상 안 받고 민원도 안해주겠다'며 상을 '보이콧'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 보좌관은 "상에 집착하는 의원실은 대부분 초선이나 비례대표 의원이고 그 외엔 별로 관심이 없다"며 "중진 의원의 경우 각종 단체에서 상을 주겠다고 몰려오는데 대부분 거절하느라 바쁘다"고 귀띔했다.
의원들 대부분은 '상의 가치'가 의심스러우면서도 의정활동보고서에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상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취업준비생이 자기소개서에 한 줄 더 채워넣으려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스펙'에 몰두하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포지티브 캠페인 순기능 발휘해야"
'우수의원상'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의 활동을 평가하고 상을 주면 그만큼 주요 이력을 국민에게 알리고 의원 활동을 독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을 이끄는 법률소비자연맹 김대인 총장은 "국회가 제기능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은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네거티브 방법과 잘한 것을 격려하는 포지티브 방법이 있다"며 "초반에는 네거티브밖에 없었지만 '그 중에 나은 사람들이 있을 테니 찾아보자'고 해서 상을 주기 시작하니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15대 국회 때는 지금보다 진행방식이 훨씬 발전되지 않은 상태였다. 자정이 넘었지만 회차 변경없이 진행돼 의원이 2~3명만 끝까지 남아있더라. 이들은 국민에게 반드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순기능을 하게 되자 '짝퉁상'도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단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연계해 의원별로 활동내역을 분석한 자료를 공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 상을 주는 기준과 내용을 유권자나 의원, 다른 의원실에서 요구했을 때 제대로 제출할 수 있게 선거법에 명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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