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파이낸셜뉴스
2015.06.03 16:42
수정 : 2015.06.03 16:42기사원문
2002년 월드컵 함성에 묻힌 그날의 기억
마음 속에 묵직함이 남았다.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2002년 6월을 뜨거웠던 월드컵의 함성으로만 기억했다는 것이. 우리가 붉은 악마의 물결 속에서 '대~한민국'을 외칠 때, 붉은피를 쏟으며 진짜 대한민국을 지켰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도.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역사적인 사건으로 온 나라가 붉은 축제에 빠져있던 2002년. 대한민국과 터키의 월드컵 3, 4위전을 앞뒀던 그날. '제2의 연평해전'이 일어났다. 6월 29일 오전 10시경이었다. 서해안 연평도에서 북한의 등산곶 684호가 대한민국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기습 공격해 해상 전투가 벌어졌다. 30분간의 치열한 격전이 이어졌고 6명의 사망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공격을 받은 357호는 결국 침몰했다.
사망자는 모두 20대의 젊은 나이였다. 군대에 있지 않았다면 거리에 쏟아져 나온 붉은 악마들 틈에서 분명 뜨거운 함성을 내뿜고 있었을 사람들이다. 뜨거운 피를 내쏟으며 전장에서 스러지는 대신, 전우의 끔직한 죽음을 지켜보는 대신.
130분의 런닝타임 중 100분 이상은 당시 전투에서 사망한 인물들의 개인적인 사연들을 보여주는데 치중한다. 이들도 누군가에게 절실한 아버지였고, 남편이었으며,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열정이 넘치는 젊음이 있었고 끈끈한 전우애와 사랑이 있었다는 것도 의도적으로 부각시킨다. 결과를 알고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선 모든 장면들이 가슴 아프다.
전투신은 마지막 30분에 쏟아진다. 실제 사건 당시 벌였던 숨막히는 30분간의 교전을 동일한 시간대로 영화에 옮겨놓았다.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리얼리티다.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세트, 의상, 분장, 동선 하나까지 그날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전투 당시 내부 상황을 실감나게 담아내기 위해 3D 광대역 스캐너라는 첨단 장비도 동원했다. 그 덕분에 마지막 30분은 숨막히도록 처절하다. 유가족이라면, 실제 인물들이라면 차마 보지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만큼 고통스럽다.
하지만 런닝타임 내내 인색했던 눈물샘은 영화가 끝난 뒤 터졌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실제 인물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기 시작할 때다. 2002년 9시 뉴스를 통해 실제 방송됐던 357호 정장 고(故) 윤영하 대위의 생전 인터뷰 장면, 생존 대원들의 인터뷰도 이어진다. 뒤늦게 터져 양껏 쏟아지지 못한 눈물은 더 큰 먹먹함을 남긴다. 10일 개봉.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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