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투기자본 편에 서면 안된다
파이낸셜뉴스
2015.07.09 17:54
수정 : 2015.07.09 17:54기사원문
소버린 사태 때 백기사 역할.. 삼성, 확 달라진 모습 보여야
국민연금은 어느 쪽에 표를 던져야 하나. 삼성인가 엘리엇인가. 오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 의결권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가진 2대 주주다. 삼성과 엘리엇의 지분은 주총을 제 뜻대로 끌고 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결정권은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국민연금은 딜레마에 빠졌다. 엘리엇 편에 서면 투기자본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삼성 손을 들어주면 대기업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최근 사례를 보면 국민연금은 합병에 반대표를 던질 공산이 커보인다. 세계 1·2위 의결권 자문사들이 반대를 권했고, 국내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국민연금은 더 이상 예전의 거수기가 아니다. 실제로 지난달엔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SK와 SK C&C의 합병에 반대표를 던졌다. 앞서 3월에도 기아차 주총에서 이사들이 경영진 감시·감독 업무를 소홀히 했다며 사외이사 재선임에 반대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찬반 기준을 주로 주주가치 훼손 여부에 둔다. 온 국민의 쌈짓돈을 모아 운용하는 기금이 수익률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투기자본이 끼어들면 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1700억원을 투자한 소버린은 2년여 만에 1조원 가까운 수익을 챙겨 떠났다. 국민연금은 온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돈이다. 길게 보면 우리 대기업들이 잘 돼야 연금 수익률도 높아진다. 국민연금이 약탈적 헤지펀드의 장단에 놀아나선 안 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어떤 근사한 명분을 내세우든 헤지펀드들이 노리는 것은 돈이다.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든 그들에겐 알 바 아니다.
이미 소버린 선례가 있다. 국민연금이 우리 기업 편에 선다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다만 삼성은 먼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들과 소통하는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연금도 떳떳하게 합병 찬성 의결권을 행사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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