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3001번' 여기자, 일일 수감생활해보니

파이낸셜뉴스       2015.10.28 06:54   수정 : 2015.12.14 14:54기사원문





【청주(충북)=신아람 기자】 "수인번호 3001번입니다."

지난 26일 오후 2시 충북 청주시 미평동 청주여자교도소 입출소대기실에서 이름을 버리고 네 자리 번호를 부여받았다. 사복, 가방 등 모든 소지품은 쑥색 영치망에 담겼다. 화장품은 기초 화장품과 선크림, 립밤까지만 허용된다고 했다. 하늘색 담요와 방석, 밥그릇 3개와 플라스틱 수저, 베개가 손에 쥐어졌다. 내려왔던 컴컴한 계단을 다시 올라가 운동장으로 향하니 산책 중이던 수용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또 한 명이 들어왔네. 누굴까'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덜컹.' 2사동 19실의 철문이 닫히고 감옥살이가 시작됐다. 16.64㎡ 규모인 이 방에는 보통 수용자 7~8명이 생활한다. 냉기가 느껴지는 바닥에 급한대로 방석을 깔고 풀썩 앉았다. "바로 앉으라"는 교도관의 목소리가 곧바로 귀에 꽂혔다. "생필품은 방 구석에 아무렇게나 두면 안 된다"는 주의는 덤이었다. 담요나 이불을 아무때나 펼 수 없었고 옷도 마음대로 벗을 수 없었다. '쉬어'라는 교도관 지시가 내려진 후에야 다리를 조금 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가는 화장실에는 물이 담긴 붉은 고무통이 놓여져 있었다. 수도꼭지를 트니 찬 물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멍하니 있다 문득 시간이 궁금했지만 방에는 시계가 없었다. 오로지 손목시계로만 볼 수 있다고 했다. 교도관의 호출로 밖을 나서며 시간을 물으니 십여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각종 교육이 진행되는 '다솜 문화의 집'으로 향했다. 국내 유일의 여성교도소임을 말해주듯 건물 벽면은 노랑, 초록, 하늘색 등 알록달록 색칠됐고 아기자기한 화분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이날 인성 교육의 주제는 '소통과 불소통'. 6개 테이블에 둘러앉은 수용자 17명은 그림으로 그려낸 마음 속 응어리를 함께 나누고 있었다. 이 시간은 수인번호가 아닌 이름 석 자가 불리는 몇 안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 중년 수용자가 사람이 그려진 A4 용지를 들고 앞에 나섰다. 가슴은 빨갛게 칠해졌다. 그는 "자유가 없다. 아들이 있는 캐나다에 가고 싶다"며 "옆에 그린 달력은 세월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강사가 '소중한 것을 꽃잎 그림 안에 적어보라'고 하자 어느 수용자는 '슬픈 기억 삭제'를, 다른 수용자는 '남은 삶'을 꼽았다. 이곳에 수용된 기결수는 680명, 미결수는 27명으로 형이 확정된 자들이 대부분이다. 무기징역 수용자도 체념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혹시 모를 가석방과 삶의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는 듯 했다.

교육을 마치고 간 곳은 작업장이었다. 복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용자들은 한복 속치마 제작, 카시트 제작, 마스크팩 포장, 화훼 장식 등 다양한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루 8시간에서 12시간까지 일하면 적게는 월 3만~5만, 많게는 34만원을 받는다. 이 중 커피 바리스타와 한식 조리가 인기가 좋다고 한다.


오후 5시가 되자 점호가 이뤄졌고 철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너도 곧 나올거잖아. 부러워하지 말고 울지 말고. 약해빠져가는 널 우짜면 좋노.' 먼저 출소한 수감자가 동료 수감자에게 남긴 벽 낙서를 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기자는 주변이 어둑어둑해진 후 철문을 빠져나왔지만 이 곳 청주여자교도소에 몸담은 수용자 707명은 내일도 모레도 오전 6시30분 점검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hiara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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