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디언들은 왜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나

파이낸셜뉴스       2015.11.12 18:51   수정 : 2015.11.12 22:49기사원문
척박한 땅 아메리카선 옥수수만 재배.. 가축 사육에 한계, 문명 발달 못 이뤄
유라시아는 밀·쌀 등 곡류 다양 아메리카선 수렵·채취에만 의존 농업 발달 기대하기 힘들어
가축으로 인한 전염병 면역 없어 유럽인들의 침입에 쉽게 무너져 각 부족간 교류도 쉽지 않아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5000년 전 인디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다. 즉 인종 간 문명수준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라시아에 남아 있던 인류는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발전했으나 아메리카로 건너간 종족은 석기시대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미국의 일부 고대문명 유적에서 구리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고, 남미의 잉카제국에선 스페인군이 침입하던 무렵 막 청동기로 이행하는 중이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문명수준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문명수준 격차로 인해 철제무기로 무장한 유럽인들은 돌도끼와 활로 저항하는 인디언들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 백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라는 생물무기는 철제무기보다 몇십배의 위력을 발휘해 전쟁다운 전쟁 한 번 제대로 치르지도 않고 유럽인들은 너무나 쉽게 인디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자연환경 차이가 문명수준 격차 만들어

이러한 문명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백인의 우월성을 신봉하는 인종주의자들은 인종 간의 지적능력 차이로 인해 문명수준의 차이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유명한 인류학자이면서 진화생물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인류학 분야의 고전이 된 그의 명저 '총 균 쇠'에서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의 이름만큼이나 찬란한 논리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문명수준의 격차는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수렵과 채취에 의존하는 생활방식에서는 문명발달을 기대할 수 없다. 야생의 식물을 개량해 농작물화함으로써 농업에 기반을 둔 정착생활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잉여생산물과 여유시간을 이용해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도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밀, 보리, 쌀 등 곡물류 농작물로 개량할 수 있는 식물이 비교적 풍부했던 반면, 아메리카에는 옥수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옥수수는 유라시아에서 생산되는 곡물에 비해 훨씬 적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유라시아에는 소나 말, 낙타와 같은 대형 포유동물을 가축으로 사육할 수 있었던 반면, 북아메리카에는 개밖에 없었으며 남아메리카에는 개보다는 약간 큰 라마가 있었으나 소나 말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체격이 작았다.

또한 유라시아에서는 가축의 분뇨를 농작물 경작 시 비료로 활용할 수 있었으나 아메리카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유라시아에서는 가축으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함으로써 무거운 화물도 운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축의 힘을 빌려 쟁기질도 할 수 있었기에 토지의 생산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는 수레를 끌 만한 가축이 없었으므로 수레의 발명 필요성조차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며, 농업 생산에서도 오로지 사람의 힘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산성이 비교적 낮을 수밖에 없었다.

유라시아인들은 다양한 가축으로부터 전염병에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여 전염병에 대한 면역성을 키울 수 있었던 반면, 전염병이 별로 없는 청정지역에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면역력을 갖지 못했다.

실제로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1533년 잉카제국을 침략했을 때 백인들이 가져온 천연두가 멕시코를 경유해 남미에도 이미 널리 퍼지게 돼 인구의 대부분이 사망했기 때문에 손쉽게 잉카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은 비슷한 위도에 걸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반면에 아메리카는 북극권에서부터 남극권까지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유라시아의 동서 간에는 기후 차이도 크지 않은 데다 특별한 지리적 장애도 없었기에 동서 간 문물교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은 위도 차이로 인한 심한 기후 차이 외에도 사막과 높은 산으로 인해 지역 간 이동에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는 문명의 팽창과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디언들은 운이 나빠서 문명발달에 불리한 땅을 택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발전한 문명권의 인류에게 정복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부족 간 교류 단절이 빚어낸 수백개 언어

바로 이웃 부족 간에도 교류가 별로 없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디언의 말은 분화를 거듭해 수백종의 언어가 형성됐다. 인디언의 언어는 워낙 복잡다기해 언어학자들이 이들 언어의 공통점을 찾아내 체계적으로 어족을 분류하는 데 큰 애를 먹고 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에만 약 300개의 언어가 있었지만 이 중 상당수는 이미 사라졌으며 남아 있는 언어들도 극히 소수의 언어를 빼놓고는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북미 인디언들도 주류사회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부족의 언어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져가는 원주민의 언어를 보전하고 나아가 그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은 1990년 소위 '원주민언어보전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힘입어 인디언 부족들은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등을 이용해 저마다 부족 고유의 말을 되살리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디언 고대문명의 기반은 옥수수

아메리칸 인디언의 문명 출현 배경에는 이른바 '세 자매'가 자리하고 있다. 세 자매란 호박·옥수수·콩을 일컫는 말로서, 고대 인디언들은 이 세 종류의 작물을 함께 재배하는 독특한 기술을 개발했다. 세 자매 중 특히 옥수수는 인디언의 생존과 문명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옥수수를 포함한 세 자매 작물농업은 문명 건설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했다. 거의 모든 인디언 부족들의 기원에 관한 신화에는 옥수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옥수수는 멕시코의 테우칸 계곡에서 최초로 재배됐는데 약 4500년 전 무렵부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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