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에 외면 받는 무액면 주식제도, 왜?
파이낸셜뉴스
2016.03.20 17:32
수정 : 2016.03.20 21:26기사원문
무액면주식도 분할때마다 주총 개최 '반쪽 제도'
증자·감자 자유로운 미국.. MS, 주식 아홉번이나 쪼개
애플도 주식수 56배로 늘려 효율적 주가관리·자금조달
■자유롭게 주식 쪼개는 미국
무액면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홍콩 등이다. 액면가의 개념을 없애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지 않아도 자본조달(증자)이나 자본감소(감자)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고가주를 잘게 쪼개서 효율적인 주가 관리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애플은 지난 1987년과 2000년, 2005년 2대 1 비율의 주식 분할을 한 뒤로 지난 2014년에는 7대 1 비율의 분할을 추가로 단행했다. 발행 당시에 비해 주식 수가 56배 늘어난 셈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기준 애플 주가는 105.62달러, 하지만 주식 수를 늘리지 않았다고 가정해 역산하면 주가가 5931.52달러까지 높아진다.
코카콜라는 지난 1965년부터 2012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주식 분할을 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도 1987년부터 2003년까지 아홉 차례 주식을 쪼개면서 회사 성장에 따른 주가 급등에 대응했다. 비자는 지난 2000년에는 주식 병합을, 지난해에는 주식 분할을 각각 시행했다.
일본은 지난 2001년 상법 개정으로 무액면 제도로 일원화했다. 지난 2014년 홍콩 회사조례 개정으로 주식 액면가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는 국내에 상장된 홍콩 기업들이 잇따라 무액면 주식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반쪽자리 제도 '무액면'
미국의 다우지수 구성종목처럼 무액면 제도는 주식의 분할이나 병합을 통한 주가 조절을 용이하게 한다. 액면가와 관계 없이 신주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의 자금조달도 쉬워진다.
다만 국내의 무액면 주식 제도는 '반쪽자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액면 주식이더라도 주식을 분할하거나 병합하기 위해 주주총회를 따로 개최해야 한다는 점은 바뀌지 않아서다. 무액면 주식으로 전환하는 회사는 '한계기업'이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일본도 지난 1950년 무액면주식제도가 도입됐지만 이 때문에 전면 도입 전까지는 기업들의 무액면 전환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액면가가 있는 주식은 분할을 하게 되면 액면가를 감소시키고 그만큼 주식 수를 늘려 자본금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 경우 정관 기재사항인 1주당 액면가를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는 발행주식의 과반수 출석, 출석 정원의 3분의 2 찬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상법상 액면가가 없는 주식을 분할할 때도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자본금과 주식 수를 동시에 늘리는 증자는 이사회 결의로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본금은 그대로인데 주식 수만 늘리는 주식 분할의 장벽이 더 높은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무액면 주식의 분할은 별도의 주금 납입을 하지 않고 회사가 발행한 주식의 수만 증가시키는 것인데 굳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는 무액면 주식 도입을 통해 주식 분할을 쉽게 한다는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액면 주식 발행이 곤란할 정도로 회사 실적이 부진해서 무액면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다. 액면가 제도가 없으면 주가 흐름이 나쁜 기업도 증자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액면 주식 제도에서 주가가 액면가에 못 미칠 경우 자금조달을 하려면 감자를 통해 주가를 액면가 수준으로 높인 뒤 다시 유상증자를 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해야 한다.
주식 발행가액을 결정하거나 자본금을 계상할 때도 모호하다는 단점이 있다. 액면가가 정해져 있는 경우 여기다 발행주식 수를 곱해서 자본금을 정하지만 액면가가 없는 경우 주식을 발행하는 회사가 이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상법에서는 자본금을 발행가액의 2분의 1 이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발행가액 자체가 공정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합리적 발행가를 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따로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sane@fnnews.com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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