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묘법 No.10-78'

파이낸셜뉴스       2016.04.28 17:43   수정 : 2016.04.28 17:43기사원문
긋고 지우다.. 비움의 미학



에마뉘엘 페로탱 등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잇따른 전시로 주목받고 있는 단색화의 주역 박서보(85).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특정 대상이 아닌 그리는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화가다.

지난 1973년부터 무려 40여년간 그의 평생의 기반이 되어온 '묘법(Ecriture)' 시리즈는 세 살 난 아들이 네모 칸에 글씨를 써넣는 연습에서 얻은 깨달음이 그 시초다. 아들이 이전의 행위를 지우거나 부정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조형세계의 본질을 찾은 그는 "나의 그림은 수신(修身)의 도구에 불과하다. 수신 과정의 찌꺼기가 그림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어떤 깨달음을 얻기까지 끝없이 비우기를 반복하는 작업이다. 캔버스에 백색의 유성물감을 칠하고 초벌이 마르기 전에 연필이나 끝이 뾰족한 도구로 화면을 지우듯 손을 움직이면서 작가는 흡사 도(道)를 닦는 수행자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한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묘법은 물질과 행위의 관계에서 이미지를 지우고 가장 원초적 흔적만 남기는 행위의 기록이다.
이 행위는 숨을 멈춘 상태의 무아지경의 흔적이다"라고 했다. 한 호흡 동안 가장 순수한 세계의 몰입상태에서 어떤 목적성도 갖지 않고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은 그에게 있어 자신을 깨우치고, 돌아보는 수신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그의 예술적인 정체성은 동양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예술적 행위로 실천하는 수행의 산물이며, 작가 박서보는 그렇게 '묘법'을 통해 수행과 자기 정화를 넘어 현대인을 위한 치유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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