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 '족보'

파이낸셜뉴스       2016.05.09 16:44   수정 : 2016.05.09 16:44기사원문
신체는 정체성의 증명이자 언어다



1990년대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의 억압적 분위기에 저항하는 예술가 집단들이 출현했다. 특히 베이징 이스트빌리지의 예술 커뮤니티 활동을 기반으로 한 장환(51)은 1990년대 중국의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현대미술을 이끈 주인공으로 손꼽힌다. 종종 중국 정부에 제재를 당할 만큼 급진적이었던 그의 퍼포먼스는 대개 나체로 등장하는 신체를 이용한 마조히즘적 프로젝트였다.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그에 저항하는 집단의 힘, 민주주의와 그에 역행하는 현실 등을 언급했다.

'족보(Family Tree)'는 그의 중요한 퍼포먼스로 꼽히는 작품 중 하나로, 퍼포먼스는 이후 9장의 기록사진 연작으로 남았다. 장환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3명의 서예가에게 개인적 이야기, 중국의 속담, 중국 소설 속에 나오는 문장들을 그의 얼굴 위로 쓰게 했다. '우공이산 (愚公移山)'이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검은 먹의 글씨가 얼굴을 가득 메우고 이내 얼굴 자체를 지운다. 일련의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는 전통에 빗대어지는 지배적인 힘 앞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침강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말한다. "마침내 아무도 내 얼굴의 피부색을 몰라본다. 마치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는 한 사람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장환의 신체는 퍼포먼스를 통해 진정 사라진 것인가? 얼굴에 쓰인 글자의 겹은 그의 신체를, 장환 자신을 구성하는 정체성을 지워버렸는가? 끊임없이 쓰이는 글씨는 각인을 하면 할수록 사라진다. 결과로 남은 검은 얼굴은 이런 행위의 결과이면서 각인의 흔적이다.
모든 이의 행위에 대한 역사는 개인을 지우지만 개인의 신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장환은 마지막으로 말한다. "신체는 정체성의 증명이면서 일종의 언어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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