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됐지만 혜택은 '뚝' 의무는 '쑥'
파이낸셜뉴스
2016.05.10 17:54
수정 : 2016.05.10 17:54기사원문
대기업 임원
경총, 전국 219개기업 대상 '승진·승급 실태조사'
임원 승진비율 '대기업 0.47%' '中企 5.6%'에 불과
사실상 '계약직' 전환.. 회사·직급별 처우 제각각
#. 올 초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사에서 임원인사가 있었다. 상무로 3년째 근무했던 B씨는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던 임원이었는데,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하루아침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룹에서 근무하던 부장급 후배가 자기 자리에 발령이 난 것. 대기업 임원 자리는 정원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정해진 임원 숫자를 늘릴 수 없기에 그룹에서 소위 '챙겨줄' 누군가를 위해 B씨를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신규 임원을 발령낸 것이다. B씨도 인트라넷에서 인사공고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미리 넌지시라도 알려줄 수 없었을까 섭섭했지만 이미 이런 사례를 봐왔기에 묵묵히 짐을 쌌다. 임원 승진하는 날부터 언젠가 닥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년 남짓 고문역으로 주어지는 기간에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게 남은 숙제였다.
<이 기사는 복수의 인터뷰를 일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년 전부터 차기 임원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매년 조마조마했습니다. 돼도 좋고 안 돼도 좋다는 심정이었죠. 요즘은 임원이 됐다고 해서 떵떵거리고만 살 수는 없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초임 임원은 연봉이 즉각 오르지도 않는 데다 제공되는 혜택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죠. 기업들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임원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은 몇 배나 많아졌습니다.
■바늘구멍 통과하면 '임원'…거기도 '급'이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219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승진.승급관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직급별 승진율이 유지된다는 가정에 따라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74%라고 합니다. 1000명의 입사 동기 중 7.4명만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약간 달랐습니다. 대기업의 부장 승진비율은 1.8%, 임원 승진비율은 0.47%에 불과했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부장은 11.5%, 임원은 5.6%였으니 좀 낫긴 하지만 그래도 바늘구멍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별로 약간씩 다르지만 부장까지 올라가는 데 보통 '4455'를 적용합니다. 사원 4년, 대리 4년, 과장 5년, 차장 5년입니다. 부장을 달고 나면 5년 뒤부터는 임원 승진 대상이 되는데 이는 사람이나 부서에 따라 짧아지기도 합니다. 20년가량 과오 없이 잘 달려가면 임원 자리를 넘볼 만한 자격이 생긴다고 보면 됩니다.
임원도 종류가 많습니다. 이사대우, 이사, 상무보, 상무, 전무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사 직급이 없는 곳도 있고 상무보가 없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사대우부터 임원이 시작되는 회사의 경우 초임 임원은 부장급일 때나 별반 처우가 다를 게 없습니다. 임원이 되는 순간 퇴직금 정산이 끝나고 계약직으로 전환되지만 별도의 방도 없이 사무실에 파티션 하나만 쳐줄 뿐입니다. 승용차나 비서도 상무가 돼서야 나오지요.
■임원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상무급 임원이 되면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2억원이 훌쩍 넘는 연봉을 받게 됩니다. 회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3억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는 곳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전무급이 되면 소위 "돈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표현할 정도로 진정한 고액연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커다란 전용 집무실에 전담비서, 3000㏄급 대형차와 전담 기사도 배치됩니다.
상무급에서는 기사가 딸리지는 않지만 준대형급 차가 지급됩니다. 기사는 없지만 요즘은 기업들은 대리운전회사와 계약해 임원들에게 사용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임원들의 전화번호와 이름, 자택 주소를 대리운전회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전담기사 못지않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임원급부터는 해외 출장 시 '비즈니스' 이상의 좌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비행 시간에 따라 좌석을 차등하도록 바뀌었습니다. 6시간 이내 거리는 임원들도 이코노미를 이용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보유한 골프장 회원권을 이용할 자격도 생깁니다. 부장급일 때는 없던 조건이지요.
회사에서 보통 연수원이란 이름으로 휴양시설을 한두 군데 가지고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여기를 이용할 때 상무급 임원부터는 더 좋은 방이 제공됩니다. 건강검진 때도 '골드' 등급에서 '플래티넘' 등급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가족에게까지 혜택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비 지원이나 자기개발비도 지급되는데, 이는 부장급일 때 제공되는 것에서 한도가 조금 더 늘어나는 수준이니 그리 큰 혜택은 아닙니다.
■기업의 '별', 한순간 사라지는 '별똥별'
요금 기업들은 임원급 인력에게 '장기성과급제'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년간의 성과를 종합해서 평가하겠다는 얘기지요. 매년 지급되는 성과급에 별도로 장기성과급까지 받는다니 더 좋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장기성과급제는 해당 임원이 성취목표를 얼마나 제대로 달성했는지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 임원 직급에 회사의 평가조건이 늘어난다는 것은 더 큰 불안요소가 될 뿐입니다.
상무급 이상이 해임될 경우 고문역, 자문역 등의 이름으로 1년가량 급여의 70% 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급이 나뉩니다. 앞에 '상근'이 붙어 있을 경우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를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집에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임시직인데 뭐가 다르냐고 할 수 있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임원은 갑자기 나갈 수도 있듯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자리입니다. 상근 자문역으로 회사에 얼굴을 꾸준히 비치다 재임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임원이 돼서 많아진 연봉, 자동차, 사무실, 비서 등 많은 혜택을 누리지만 주말에도 불안해서 회사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원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첫 승진 때는 드디어 별을 달았다고 기뻐했지만, 점점 이 별이 어느 한순간 사라져버릴 '별똥별'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게 됩니다.
늦은 회의를 마치고 사내 정치를 위해 후배, 선배들과의 술자리에도 얼굴을 비쳐야 합니다. 능력만 있다고 오래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회사에서 준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피곤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난 힘을 내야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임원이니까요.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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