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은 OK, 원전은 NO!.. 정치권도 이기주의 부채질
파이낸셜뉴스
2016.06.20 17:45
수정 : 2016.06.28 18:01기사원문
멈춰선 국책사업<br />지역갈등 뇌관으로.. 호남고속鐵 유치전 과열<br />삼척 원전 선거에 휘둘려<br />결국 공정성 문제.. 국책사업 입지선정 불투명<br />여야도 '포퓰리즘' 버려야<br />
정부의 국책사업이 지역 이기주의의 벽에 부딪혀 휘청댄 경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호시설은 적극 유치하겠다면서도 혐오시설은 절대 들일 수 없다는 지역주민들의 입장은 사실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투명한 의사결정과 친환경시설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개발에 따른 부동산가격 상승과 자녀 교육환경이라는 경제적 이득 추구가 병존하는 게 사실이다.
■지역갈등.국론분열 확산 우려
님비(NIMBY)현상과 핌피(PIMFY)현상으로 둘러싸인 '현재진행형' 국책사업은 여전히 많다. 동남권 신공항을 비롯해 호남고속철도(KTX)나 항공정비(MRO)단지, 서울세종고속도로 등은 지역마다 앞다퉈 유치작전에 나서고 있지만 강원 삼척 원자력발전소와 일산 행복주택 건설사업,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후보지 등을 두고는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님비현상과 핌피현상은 지역 간 갈등을 낳고, 갈등은 분열과 불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핌피현상이 낳는 갈등과 분열은 님비현상에 비해 더욱 파괴력이 크다.
님비현상은 지역에 들어오는 혐오시설에 대한 특정 지역민의 반발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핌피현상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시설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여러 지역이 경합을 벌이는 탓에 지역 간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동남권 신공항 유치 결과에 따라 동남권 내 지역갈등이 장기 고착화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 논란이 그동안 잠복해 있던 님비현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삼척 원전건설이나 일산 행복주택, 사드 후보지 선정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0년 12월 삼척시는 당시 지식경제부에 신규 원전건설 부지 유치 희망서를 제출했다. 2012년 9월 지식경제부는 삼척시의 원전 유치 신청 허가를 심의.의결했으나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반핵'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김양호 후보가 당선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급기야 같은 해 10월 주민투표가 시행됐고 참여자 85%가 반대 의견을 냈다.
현재 정부는 원전 건설은 국가 사무라는 점에서 주민투표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보고 건설을 강행할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신공항 입지선정 논란의 바람을 타고 지역민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건설사업의 백지화가 고개를 들 수 있다.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지난달 10일 경기 고양시 장항동 145만㎡ 규모 부지에 행복주택 5500가구를 포함한 주택 1만2000여가구를 건립할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일산 주민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고양발전시민모임'이 꾸려졌고 이들이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하면서 지역 내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교통체증 심화, 베드타운 전락, 집값 하락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로 건립계획이 확정됐다는 것 역시 주민들의 불만이다. 건립계획 철회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사드 배치 후보지 선정을 둘러싸고 일부 지역의 거센 반발이 예고되고 있다. 실제 최근 충북 음성이 후보지로 거론되자 지역 여론이 들끓었다.
국방부는 후보지 선정 결과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사드 배치 후보설이 돌 때마다 지역마다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결정이 나진 않았지만 행여나 최종 후보지로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반발 여론이 선제적으로 일면서 국론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공정한 결정의 부재가 문제"
전문가들은 님비 혹은 핌피 현상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와 과정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진단한다.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목진휴 교수는 "우리 지역 내 좋은 시설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데 다른 지역에 유치하라고 얘기할 지역주민이나 지자체장, 정치인이 어디 있느냐"면서 님비현상과 핌피현상은 모든 인간의 자존적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A지역이 좋다고 하면 그 결정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서 갈등이 촉발된다"고 지적하며 "지역민이 결정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국책사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최적지가 아닌 곳에 각종 시설을 유치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책사업 입지선정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반대가 있더라도 금세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국책사업에 대한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결국 님비현상이나 핌피현상 자체보다는 정부의 결정에 불복하는 움직임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그러나 입지선정 원칙이 세워진다고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제3기관인 외국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기면서 비교적 후보지 선정기준을 잘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원섭 교수는 "노무현정부 이후 국책사업 평가제도가 만들어졌고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서도 정부나 연구기관이 충분한 분석을 했다"며 "문제는 정책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얼마나 잘 고려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 결정구조를 문제점으로 지목하며 "아무리 기준을 정하더라도 결국은 정치적 판단이 좌우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국회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당이든 보수당이든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모든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지역에는 책임을 안 지우는 경직된 사업추진 구조가 갈등을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경민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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