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美 정부에 쿠데타 배후 '귤렌' 송환 요구..美 "증거 먼저"
파이낸셜뉴스
2016.07.17 13:01
수정 : 2016.07.17 13:01기사원문
터키 쿠데타의 배후세력으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무함메드 펫훌라흐 귈렌의 송환을 놓고 터키 정부와 미국이 대립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정부에 '실패한' 쿠데타 배후로 귈렌을 지목하고 그를 터키로 넘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증거를 먼저 제시하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귈렌은 에르도안 정부와 적대적 관계로 현재 미국에서 망명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에서 "터키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한 테러리스트 추방 요구를 거절한 적이 없다"며 '실패한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귈렌을 추방해 터키로 넘길 것을 공식 요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기여한 역할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전략적 파트너라면 미국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다만 에도르안 대통령은 귈렌의 이름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를 가리켜 '미국 펜실베니아에 사는 사람'을 넘기라고 했다.
귈렌은 '히즈메트'(Hizmet·봉사라는 의미)라는 이슬람 사회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슬람 사상가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선정한 '세계 최고 100대 지성' 투표(2008년)에서 1위에 오를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발발한 터키 군부 쿠데타 이후, 구속되는 등 정치적 탄압을 겪었다. 1999년 지병 치료차 미국 이주 이후 현재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자진 망명 중이다. 망명 중임에도 귈렌은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지난 2002년 집권한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과 협력해 세속주의 세력에 대항했다. 이후 에르도안은 법까지 바꿔 12년간 세차례 총리직을 연임하며 권력을 강화했다. 정치체제도 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했다. 에르도안의 독재에 반대한 귈렌은 협력적인 동반 관계에서 '정적'으로 돌아섰다. 귈렌은 2013년 부패 수사에 연루됐고, 완전히 적대적 관계가 됐다. 귈렌은 지난 2014년 3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고 주장, 사실상 에르도안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터키 정부는 귈렌과 연관된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면서 지난 1월 귈렌을 국가전복혐의로 기소해 궐석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귈렌은 터키 이슬람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귈렌은 이날 기자들에게 자신이 쿠데타 배후라는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군사 행동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꾸민 자작극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귈렌은 이날 펜실베이니아 세일러스버그 포코노스의 거주지에서 기자들을 만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제기한 비난을 세계가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쿠데타는 연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정부의 쿠데타 배후 인물의 송환 요구에 대해 미국은 법치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터키를 도울 것"이라면서도 "귈렌을 추방하려면 그가 쿠데타 배후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 이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태는 법에 따라 해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폭력이나 불안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쿠데타 세력에 '피의 숙청'을 예고한 에르도안 정권에 대한 경고 메시지다. 그러면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터키 정부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입장도 확인했다. 이날 백악관은 성명에서 "터키의 모든 정당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현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터키의 모든 당사자가 법치에 따라 행동하고 폭력·유혈 사태를 초래할 어떤 행동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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