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정 '눈밭의 비겁자'

파이낸셜뉴스       2016.11.07 17:50   수정 : 2016.11.07 17:50기사원문
눈밭을 어지럽힌 발자국, 당신입니까?



이소정의 추상적 이미지를 맞닥뜨릴 때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아도 대체적으로 신체기관, 자연물, 돌연변이 등의 유기체를 연상하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자연발생적 추상 이미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여지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며 제작 과정을 다시 논리적인 계획으로 재구성하거나 최소한의 매뉴얼을 통해 화면에 단서를 제시한다.

'눈밭의 비겁자'에서 작가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하는 다양한 기호를 사용한다. 그는 '재생(Play)'과 '정지(Pause)'를 표시하는 하나의 삼각형과 두 개의 직사각형을 각각의 화면 중심에 배치했다.

기호를 중심으로 자동적으로 발생한 이미지들이 다채로운 농담과 선과 면으로 유려하게 표현됐다. 화려한 먹의 선과 면을 지나서 마주치는 기호들은 도망치는 한 사람이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마주하게 된 순간, 즉 '눈밭의 비겁자'가 처한 상황을 상징한다.

눈을 밟고 지나가게 되면 발자국을 통해 그의 행로는 바로 탄로날 것이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다. 작가는 눈밭을 지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사람의 머릿속을 재생 표시로, 그에 따라 순간순간 멈추게 되는 신체를 멈춤 표시로 나타내고 있다. 그는 지나가는 내내 재생과 정지를 반복할 것이다.


작가는 '눈밭의 비겁자' 이후로 줄곧 자동발생적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토대가 되는 규칙이 공존하는 화면을 만들고 있다. 작가의 최근 작업에서도 동양화의 먹과 붓이 가진 아름다움이 도드라지고, 표면은 더 솟아오르는 등의 변화는 있지만 이미지의 자율성과 자율성을 이끌어내는 규칙의 반복은 여전하다. 이 역설적인 결합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작업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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