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태 '말과 글-책 위에서의 명상'

파이낸셜뉴스       2017.01.09 17:15   수정 : 2017.01.09 19:11기사원문
꿈속의 풍경으로 달려가는 자전거



인간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것 같은 산중, 두 줄기 하얀 폭포가 보이고 거대한 책 한 권이 가로 놓여있다. 걸리버 여행기 속 소인이 이곳에 튀어나온 걸까. 흡사 미니어처 사이즈의 일상의 물건들이 공중에 둥둥 떠 있다. 마치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 같은, 꿈에서나 볼듯한 초현실적 풍경을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마그리트'로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는 유선태 작가(59)의 '말과 글-책 위에서의 명상'(2016년)이란 작품이다. 홍익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파리 제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여년간 유럽에서 활동해오다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은 한마디로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에 나오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인간이 살 것 같지 않은 이상적 공간)'이다. 첩첩산중,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풍경 속에 그것과는 이질적인 문명의 물건인 책, 축음기, 이젤, 타자기 등이 공중에 떠 있다. 일상의 익숙한 이미지들을 엉뚱한 곳에 가져다놓아 낯설게 만드는 초현실주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열쇠는 바로 자전거를 탄 인간이다.
그의 작품들 속엔 자전거를 탄 사람이 등장하곤 하는데 그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어린 시절 자전거 여행의 기억을 담았다고 한다.

자전거는 동시에 예술이라는 궤도를 쉼없이 가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자전거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엔 소중한 자전거 하나쯤은 있는 것 아닐까.

조은주 갤러리조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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