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만 뽑아주다 죽고 마는 ‘공혈견’의 일생

파이낸셜뉴스       2017.02.09 11:00   수정 : 2017.07.05 15:56기사원문



‘공혈견’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알고 계신 분도, 생소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치거나 병든 개들에게 혈액을 공급하는 개, 바로 공혈견입니다.

반려견이 다쳐서 출혈이 심해 수술해야 할 때 공혈견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꼼짝없이 사망하거나 장애를 갖게 될 겁니다.

공혈견은 경찰견, 안내견처럼 인간을 위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혈견을 두고 종종 위생, 학대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동물보호 시민운동단체 케어는 지난 2015년 강원 고성군청 담당 공무원과 함께 국내 독점적 동물 혈액 공급 업체인 ‘한국동물혈액은행’을 찾았습니다. 공혈견 관리 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동물혈액은행 측은 사육장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논란 후 1년이 훌쩍 넘은 지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공혈견 관리 기준은?

공혈견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요?

세계동물혈액은행 지침을 보면 공혈 기준은 몸무게 1kg당 16mL 이하입니다. 채혈 후 다음 채혈 기간까지 6주를 둡니다. 혈액 수요가 많다 보니 체중 27kg 이상 건강한 개들이 공혈견이 됩니다. 단순히 몸무게만 봤을 때 골든 리트리버, 래브라도 리트리버, 셰퍼드, 도베르만 등이 해당합니다.

반려견의 혈액형은 13가지인데, 수혈 가능한 종류는 6가지 정도입니다. 빈혈과 개적혈구항원 부작용도 없어야 하죠. 즉 ‘수혈 가능한 혈액형을 가지고 빈혈, 개적혈구항원 부작용이 없는 몸무게 27kg 이상 대형견’이 공혈견이 됩니다. 얼핏 봐도 까다로워 보입니다.

한국은 지난해 일부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5년 의혹이 제기되자 농림축산식품부와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대한수의사회,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한국동물혈액은행, 백산동물병원이 '혈액 나눔 동물의 보호·관리 가이드라인 2016'을 제정했습니다. 가이드를 보면 '혈액 나눔 동물은 시설 또는 기관에서 자체 구입하거나 기증받은 동물', '혈액 채취에 내과적인 자격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동물'로 규정돼있습니다.





■독점적 공급구조 깨뜨리고, 정부 주도 지침 만들어야

2015년 논란 당시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외부인 무단 침입으로 방역을 해야 한다며 한시적으로 혈액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반려견 보호자들이 마음을 졸였습니다. 독과점은 큰 위험성을 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생명과 관련된 제품을 다룬다면 소비자들의 걱정은 더 크겠죠.

동물 혈액 공급 채널을 늘려야 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단 한 번의 관리 실수로 혈액 공급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동물병원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한국 현실에 맞는 매뉴얼을 만들고 실무 기관을 운영해야 리스크가 줄 것입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직장인 A씨는 “공급업체가 한 곳이면 문제가 생겼을 때 큰일 아닌가.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일 듯”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무엇이든 독점은 문제 아닐까요? 경쟁이 없으면 부작용이 생기는 사례를 많이 봤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죠”라고 언급했습니다.

B씨는 “민간업체가 희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건지 법적 빈틈을 이용해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난 2012년 국회에서 반려동물 수혈 혈액 시스템 문제가 제기되고도 개선되지 못한 것은 ‘관련 법규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지난해 '혈액 나눔 동물의 보호・관리 가이드라인 2016'가 제정되며 공혈견 복지의 첫발을 뗐습니다. 반려동물의 인기가 급증하고 동물보호법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문제가 발생하기 전 주무부처의 빠른 대응이 필요합니다.



■공혈견 관리와 더불어 헌혈견 캠페인도 적극 펼쳐야

미국, 캐나다 등 반려동물 의식이 높은 일부 국가는 ‘헌혈견’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견은 약 512만으로 추정됩니다. 업계에 알려진 한국동물혈액은행이 기르는 공혈견은 최대 200마리 정도로 한 마리 당 25,600마리를 감당해야 합니다. 수혈이 필요한 반려견이 전체의 1%라고 단순히 따져 봐도 256마리나 됩니다. 외국처럼 헌혈견 제도를 정착시킨다면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채혈당하는 공혈견 복지를 높일 수 있습니다.

헌혈견으로 참여한 견공에게는 건강검진 등 혜택이 주어집니다. 개가 자발적으로 헌혈에 응할 수 없다보니 개에게 혜택을 주는 거죠. 건강검진을 통해 반려견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보호자에게도 이득입니다. 헌혈견은 ‘피를 뽑기 위한 사육’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혈견보다 개선된 제도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발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인기 견종은 말티즈, 시추, 혼종견, 푸들, 요크셔테리어 등입니다. 모두 소형견이죠. 한 번에 뽑는 피의 양이 많기 때문에 소형견은 채혈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헌혈견이 한국에 정착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윤리적 문제는 사라지지 않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혈견이든 헌혈견이든 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정입니다. 어느 쪽도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개와 인간의 교류는 1만 년 이상(최초 기록 BC 9500년경)이 흘렀고, 이제 ‘반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친밀해졌습니다.

피를 뽑기 위한 개가 필요하다면, 그래서 ‘필요악’이라면 희생에 대한 존중은 해줘야 합니다. 이제까지 실태조사도 없었고 입법 노력도 용두사미였습니다. 직장인 C씨는 “왜 공혈견이 끝까지 인간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혈견으로서 삶은 인간이 선택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이 개를 키우지 않았다면 공혈견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ocmcho@fnnews.com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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