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134건 ‘반덤핑 규제’..아세안·阿 등 신시장 개척 절실

파이낸셜뉴스       2017.02.26 16:54   수정 : 2017.02.26 22:14기사원문
美 목표는 FTA 재협상? 조사관 권한으로 관세 산정
반덤핑 여부 판정도 속도전
中도 무역장벽 높여
광섬유.화학 등 잇달아 조사.. 배터리 등 전방위 수입규제



반덤핑관세는 통상압박 카드 중에서 가장 명확한 수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가 반덤핑관세 등의 통상압박 카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경제 수장들도 모두 보호무역 강경론자들이다.

여기에 미.중 통상전쟁이 본격화하면 한국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최남석 전북대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무역조치는 반덤핑.상계관세 부과→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면 재협상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통상압박의 전초전이 공격적인 반덤핑관세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美의 무기 '무역특혜연장법'

미국의 통상압박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역특혜연장법'이다. 피소업체에 불리한 관세율을 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을 조사관에 쥐여준 게 지난 2015년 개정법의 핵심. 피소업체가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지 않더라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피소업체에 불리한 정보(AFA)를 이용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조사에 응하지 않고 버티더라도 미국이 알아서 더 높은 관세율 제재를 하겠다는 얘기다.

AFA 적용으로 최근 한국 업체에 대한 반덤핑관세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달 한국산 합성고무에 대한 미국의 예비판정에 AFA가 적용됐다. 이 때문에 실제 부과된 덤핑마진율(최대 44%)이 높아졌다. 내부식성 철강제품(반덤핑 47.8%), 열연강판(반덤핑.상계관세 58.68%), 냉연강판(반덤핑.상계관세 59.72%) 등 지난해 고율의 '반덤핑 폭탄' 모두 AFA가 적용됐다.

미국의 반덤핑 조사건도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부터 중국에서 생산된 삼성전자, LG전자의 가정용 세탁기에 반덤핑관세(최대 52.5%)를 물리고 있다. 경쟁사인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한국 업체들의 미국내 판매가격이 생산가보다 싸다고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또 지난달 미국의 가소제(플라스틱 첨가제) 반덤핑 판결도 미국무역위원회(ITC)가 자국산업의 피해가 인정된다고 받아들인 결과다. LG화학(5.75%), 애경화학(3.96%)에 예비관세를 물렸는데, 당시 제소한 미국 업체는 50% 가까운 반덤핑 부과를 주장했다. 반덤핑 여부 판정이 매우 빨라지고 있는 것도 최근 변화다. ITC의 1차 청문회는 반덤핑 심사요청 접수 후 3주 이내에 열린다.

KOTRA 통상지원실 김건숙 전문위원은 "반덤핑 조사에 착수한 이후 최근 예비판정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중국의 기업들이 반덤핑 조사 요청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中 수입규제 장벽 높여

중국의 대한국 반덤핑 공세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올해 한국산 광섬유(비분산형 단일모듈 광섬유)를 수출하는 LS전선 9.1%, 대한광통신 7.9% 반덤핑관세를 매겼다. 지난 2013년 반덤핑세율을 높이면서 당시 한국산 수입량은 전년 대비 30%나 급락했다. 이 틈에 경쟁사인 중국 장페이광섬유.광케이블유한공사 등은 해외 영업이익이 20% 이상 증가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LG화학, 코오롱플라스틱 등의 폴리아세탈수지 제품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 기업들이 덤핑해 얻는 마진이 58.9%에 달한다는 게 중국 기업들의 주장이다. 폴리아세탈수지는 자동차 부속품, 전자전기, 공업기계 분야의 핵심소재다. 반덤핑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은 중국 시장점유율 1위(27%)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 또 중국은 지난해에 포스코 등이 수출하는 한국산 방향성 전기강판에 37.3%의 반덤핑관세를 물렸다. 그해 9월엔 한국산 설탕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조사도 착수했다.

자국산업 육성이 명분이라지만, 수입규제도 통상압박 카드다. 지난해 1월 중국 정부는 자국업체가 생산하는 전기버스배터리(리튬인산철 방식)에만 보조금을 주겠다고 했다. 다섯달 후 삼성SDI와 LG화학은 배터리 기준에서 탈락했다. 신에너지 자동차보조금 지급(2016년 12월)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또 중국 정부는 해외직접구매 세율 인상 및 통관 강화, 외국 문화콘텐츠 방영 제한, 조제분유 판매 제한, 화장품 관리 강화 등 비관세조치도 확대하고 있다.

■"수출시장 다변화해야"

앞으로가 문제다.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로 반덤핑 또는 세이프가드 조사에 착수한 건은 19건이다. KOTRA 측은 "현재 조사 중인 철강(22건), 화학(15건) 제품의 예비판정과 최종판정이 올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 제품에 대해 수입규제 건수는 180건(총 28개국)에 달한다. 이 중 반덤핑 규제(134건)가 70%를 넘는다. 규제국가는 인도(32건), 미국(23건), 중국(13건) 순이다.

문제는 수입규제에 대응할 명확한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FTA 후속이행조치 협의에서 반덤핑 문제를 거론하지만 보완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도 판결까지 3~4년이 걸린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압박을 강화하는 미국.중국과 우리는 경제규모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
상대가 안되는 게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응논리를 찾고 윈윈할 수 있는 통상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며 "우리 산업의 구조조정, 미래 고부가사업에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규 산업연구원 원장은 "미.중 통상마찰로 인한 피해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 이외 아세안, 중동, 아프리카 등 신시장을 개척하는 시장다변화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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