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과다 이월시 불이익.. 공급 늘려 가격 하락 유도
파이낸셜뉴스
2017.04.05 17:45
수정 : 2017.04.05 22:23기사원문
배출권 시장 안정화 방안
매도자 없어 가격만 급등.. 물량부족땐 정부보유분 공급
시장선 "정부가 만든 제도 결함을 기업에 떠넘기나" 반발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 안정책을 5일 발표했다. 배출권 거래는 부진한데 가격만 급등하고 있는 기형적 시장 상황 때문이다. 기업들이 보유한 상당량의 배출권을 팔지 않고 이월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이월물량을 차기 공급물량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배출권거래제의 허점을 보완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룰' 잘못 만들고선 지금 와선 '징벌제?'
이번 시장 안정화 방안은 1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2015∼2017년)하에서 남은 배출권을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으로 과다 이월할 경우 추후 배출권 할당 시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1차 계획기간 '연평균 할당량의 10%+2만t'을 초과해 이월할 경우 초과 이월량만큼 2차 계획기간 할당량에서 차감한다.
그래도 물량부족이 계속되면 정부 보유 예비분 1430만t을 유상 공급한다. 또 2차 계획기간 10%(1차 20%)로 낮추기로 했던 차입한도를 15%로 조정키로 했다. 다만 2차 계획기간 첫해인 2018년 차입비율이 클수록 다음 해 차입한도가 많이 줄어들도록 해 차입물량을 점차 줄인다. 2018년 15%를 차입하면 2019년엔 절반인 7.5%만 차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시장 안정화 방안에 대해 정부가 3년 전 배출권거래제를 처음 만들 당시 수급 문제를 야기하게끔 설계해놓고, 이제 와서 배출권거래 주체들에게 징벌제도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배출권 매도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유럽처럼 '소멸'시키는 식이 아닌 이상 물량부족은 예고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일영 기재부 기후경제과장은 "배출권거래제가 정착해나가는 과정으로 생각해 달라"며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출권, 사려 해도 못 산다…왜?
배출권거래 제도는 기업들이 정부에서 할당받은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부족 시 시장에서 사도록 한 것으로 2015년부터 시행됐다. 적용대상은 과거 3년간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12만5000t 이상인 업체와 배출량 2만5000t 이상 사업장을 가진 업체다. 현재 23개 업종 602개 기업으로, 이들은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67%를 차지한다.
그러나 개설 초기엔 거래량이 전무했다. 지난해부터는 수급 불안정이 발생했다. '매수자'는 있는데, '매도자'는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배출권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2015년 t당 평균 1만1774원이던 배출권은 2016년 1만6737원, 2017년 1월 2만751원, 2월 2만4300원으로 급등했다. 3월 평균가격도 2만1462원에 달한다.
배출권이 넉넉한 기업들이 팔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파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음 연도로 이월하는 것에도 제한이 없다.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배출권에 대해 일정기간(3년) 이상 매도하지 않을 경우 배출권이 소멸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실제 2015년도 배출권을 정산한 결과 총 522개 할당대상 기업 가운데 283개 기업이 여유배출권 1550만t을 보유했다. 이 중 88%인 1360만t을 이월했다. 반면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들은 다음연도 배출권을 앞당겨 차입했다. 하지만 차입도 기한이 있다. 1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 계획기간(2015~2017년) 마지막 연도엔 이를 정산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올해 연말 지금까지 배출권을 차입해왔던 기업들이 배출량과 동일한 수량의 배출권을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부족한 배출권 수량에 따라 과징금을 납부해야 한다. 과징금은 부족한 배출권 수량에 배출권 시장가격의 3배로 책정된다. 그러나 배출권 물량이 없어 이를 사고 싶어도 못 사는 만큼 이번 안정책을 발표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이날 중장기적 시장 활성화 대책도 함께 발표했다. 2018년부터 국내 기업 등이 해외 온실가스 감축사업 시행으로 획득한 배출권을 국내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세부 인정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단순 매매거래 외에 2016년 배출권과 2017년 배출권을 교환하는 스와프거래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도록 절차를 개선한다. 내년부터 유상할당 방식으로 배출권 경매를 매달 실시하고, 시장조성자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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